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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16. 2023

개에게 바지를 입힌다면

예전에 웹 상에서 '개에게 바지를 입힌다면'이란 주제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개에게 바지를 입힌다면, 네 다리를 감싸는 형태로 입힐지 아니면 개의 배꼽을 기준으로 뒷다리 쪽만 감싸는 형태로 입힐지.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인간 기준으로 보면 뒷다리 쪽만 감싸는 형태가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개의 입장에서도 그쪽이 더 자연스러운지 편한지 마음에 드는지, 이런 문제들은 당사자인 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옷을 스스로 입을 수 있고 옷을 좋아하는 반려동물이 있을까. 우리 집 고양이들을 보면 왠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햇살에 잘 마른 티셔츠를 개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자주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어 목구멍 쪽으로 나온다. 그럴 때마다 털과 싸워야 하는 것은 내 몫이지만 언제 보아도 흥미로운 장면임은 틀림없다.


고양이가 목을 잘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고양이에게 어울리는 옷은 목을 쓱 집어넣어 통로를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걸쳐지거나 착용이 되는 옷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치 스파이 영화에 나오는 비밀 요원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럴싸한 차림새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추우면 이불속에 파고 들어가는 고양이들밖에 없지만 뭐, 세상의 수많은 애묘가들 중 누군가가 시도해 보지 않았을까?


한 교수가 인간을 '옷을 입는 동물'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정말 적절한 설명이다. 사회적인 동물로 개미, 똑똑하고 도구를 이용하는 동물로 까치, 뭐 이런저런 인간의 돋보이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아주 납득이 잘 가고 깔끔한 정의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옷만 바꿔 입어도 사회에서의 대우가 달라지듯이 옷은 인간의 특징을 넘어 인간과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옷은 인간에게 있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떠신지. 여러 옷의 형태 중 바지는, 나에게는 인간의 직립보행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져 더 특별하다. 옷 디자인이 (디자인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몸이 공간을 어떻게 의식하고 이용하는지에 대한 정직한 반영이라고 본다면, 바지는 인간이 (여러 의미에서) 위아래를 더 의식하게 되고 사지를 더 독립적으로 쓰게 된 것에 대한 반영이 아닐까 싶은 것은 오로지 내 추측일 뿐이다(물론 역사적으로는 기마 민족 문화와 바지의 등장 간의 깊은 관련이 있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 몇몇의 독자들을 위해).


그러므로 고양이가 바지를 스스로 입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바지의 상징성을 통해 보면 고양이를 고양이씨라고 부르는 문제와 다름이 없게 된다. 옷의 목구멍을 통해 나온 잘 빼입은 고양이가 고양이씨가 되어 늠름하게 고양이씨 전용 의자에 앉아 츄르를 주문할 수도 있다, 는 상상을 하기가 무색하게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고양이들을 보며 오늘도 다행이라고 엉뚱한 안심을 하고 있다(어떻게 하다 보니 제목과 다르게 고양이 이야기로 끝이 났지만 아무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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