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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07. 2023

파란색을 어디서 배울까?

한 달 전에 주문한 만년필 잉크가 도착했다. 글씨는 아니고 그림을 그리려는 데 만년필을 자주 쓰지 않아서 막힌 잉크를 뜨거운 물로 풀어주어야 했다. 귀찮은 작업이다. 아마도 약 두 달 후면 막 쓸 수 있는 펜으로 갈아탈 것이 뻔하지만 기왕 산 것 정성스럽게 담가주었다.


만년필 하면 중학교 영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개인 과외였는데 항상 노트에 파란색 잉크로 정갈하게 글씨를 쓰면서 설명했다. 수업이 끝나면 자와 커터칼로 글씨가 적힌 페이지를 깔끔하게 분리해내어 학생 앞에 놓았다. 수업 때마다 마치 초밥 장인이 있는 일식집에서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노트는 몰스킨 만년필은 몽블랑만 쓰는, 그 외에도 핸드백이나 립스틱 등등 물건에 대한 취향이나 집착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이도 젊은데 물건에서 느껴지는 제법 오래된 취향과 사용자와의 교감이 묘했다.


그 사람의 제일 재밌었던 점은 만년필의 파란색 잉크를 매일 바꾼다는 점이었다. 매일 수업을 들은 것은 아니라 반은 추측이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수업 때마다 잉크가 바뀌었으니까. 때로는 수업내용이 아니라 써 내려가는 파란 글씨에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파란색을 정말 좋아하는 인간도 있구나 하고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 수업에서 제일 재밌었던 점도 단순히 파란색 잉크였다는 애석한 사실이 유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시간이었다(죄송합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경계가 뚜렷해서 나에게 저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들게끔 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만년필을 쓰면서 이런저런 추억에 잠겨있자니 사람들은 파란색을 어디서 배울까 궁금해졌다. 색을 배운다는 것은 글쎄,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색이 주는 느낌을 배운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무튼 궁금하다. 새로운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배움의 첫 단계라면 내 기억으로는 파란색을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은 선생님이다.


묵묵하게 이어지는 일상에는 차이나 블루, 들뜬 날에는 터키 블루,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는 인디고 블루. 색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떤 심리 상태인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오늘의 하늘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도 알 수 있었다. 직설적인 색 사용에 '가는 이렇게 생겼고 이렇게 쓰는 거야.' 아이가 글자 배우듯이 나도 색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내가 가지게 된 여러 파란색에 대한 느낌이 이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여러 파란색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느낌이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매일 같은 색의 옷(옷은 항상 검은색이었다)을 입고 딱딱하게 수업을 이어 나가는 사람이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너무도 솔직한 파란색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파란색 중에서 코발트블루를 가장 좋아한다. 코발트블루 색 옷을 입을 기회가 많지 않지만, 특히나 요즘은 옷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더더욱 그렇지만 아무튼 매력적인 색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색 제약이 없으니까 옷에 집착이 없어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 옷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다양한 빛깔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파란색을 좋아했던 그 선생님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잘살고 있을까? (사실 여전히 파란색을 자주 쓰고 있을까가 솔직히 더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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