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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09. 2023

판요리의 추억

집 앞에서 대학축제가 한창이다. 애초에 축제와 잘 맞지 않는 인간인 나에게는 사뭇 어색한 풍경이다. 모교가 축제가 그리 활발하지 않은 학교였기에 어떤 의미로는 부럽기도 하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잔디밭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내가 속할 수 없는 풍경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나는 대학 축제하면 사실 생각나는 것이 빈대떡과 막걸리밖에 없다. 술을 좋아하고 잘 먹어서 그렇지는 않고(실제로 술을 잘 못하고 요즘은 거의 안 마신다) 달리 할 게 없어서 대학 재학 시절 축제 때마다 넓은 잔디밭에 돗자리 펴고 앉아서 빈대떡이나 나눠 먹은 게 전부여서 그렇다. 가끔 빈대떡이 피자로 바뀌기도 하고 그때마다 음료도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그렇다. 연예인이나 가수, 밴드의 공연이 주를 이루고 축제 내 학생 참여 이벤트도 활기찬 것이 많기 때문에, 듣는 음악도 결이 다르고 분위기를 타서 으쌰으쌰 하기보다 혼자 이것저것 하는 사람인 나에게는 영 거리감이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다시 먹는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래서 축제 때마다 판요리(빈대떡이나 피자나 판에 슬라이스 되어 나왔기 때문에 나는 항상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판요리는 주문을 해도 혼자 먹기에는 많아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주변이 어떻든 간에 자신이 의미 있다고 판단한 일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사실 꽤나 재미있다) 아무래도 주변이 특수한 분위기로 들떠 있으면 사람이란 어느 정도 녹아들고 싶어 하는 법이 아닐까. 하던 공부나 일을 멈추고 판요리를 구실로 내가 주변 친구들을 부르는 경우도 있었고 갑자기 연락이 와서 잔디밭에 자리 잡은 무리 속에 끼어들게 된 경험도 종종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먹다가 한 조각이 남으면 판요리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판을 돌려서 마지막에 먹을 사람을 정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 판을 빙글빙글 돌리며 네가 먹어라 아니다 네가 먹어라 하는데(그때마다 덥석 집어서 먹고 싶은 것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 돌리다 보면 음식이 식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디밭 저 뒷자리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공연을 관람하는 척하면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 노을을 등지고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판을 보고 있으면 내년에도 똑같이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이 있다면 돌아오는 축제도 있는 법이다. 왜 사람들은 ‘돌아오는’ 무엇에는 무엇을 할까? 하고 항상 기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어려서도 던졌고 어른이 되어서도 던지고 있다. 돌아오는 축제들. 대학 축제도 그렇고 벚꽃 축제 불꽃 축제 눈 축제 해맞이 축제 등등.. 참 많은 축제들이 있다. 올해의 축제가 내년과 다르고, 비슷한 시간이 다시 돌아와도 절대 같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오늘은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옥상에 올라가서 축제를 즐기는 대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원 모양의 배려가 그리워졌다(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빈대떡으로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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