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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y 04. 2023

목감기와 레몬 사탕

목감기에 걸렸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고약한 난쟁이 같은 존재가 슬금슬금 목을 긁는 이상한 느낌이 들더니 수요일이 되니 조각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오늘은 목요일, 다행히 고통이 수그러들고 있다. 공기를 긁어대는 듣기 불쾌했던 목소리도 본래의 상태를 되찾고 있다. 월화수목, 기승전결을 갖춰 하루마다 바뀌는 목감기의 양상에 정신이 혼미하다. 대체 나의 목을 무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혼자 사는 입장에서 감기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제일 흔한 병이면서 제일 골치 아픈 병인 감기. 지속적으로 아프지만 견딜만한 수준이라 다른 사람을 부르기도 뭐하고 갑자기 병원에 뛰어 들어가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기도 뭐한(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병이랄까. 누군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역시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데 그렇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워하면서 여느 해와 다름없이 레몬맛 목캔디를 입에 넣었다.


아플 때 쓰는 민간요법이 있으신지. 민간요법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을 챙기는 특별한 의식 같은 행위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하나씩은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있다. 레몬 사탕을 돌돌돌 굴리는 행위가 목감기에 대항하는 나의 의식이다. 별 것 아닌 의식이지만 실제로 이것밖에 안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생강 사탕도 있고 다양한 대안이 있지만 레몬 사탕이 제일 구하기가 쉬워 언제부터인가 레몬 사탕을 많이 먹게 되었다. 레몬 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에 넣고 돌돌돌 굴린다. 그렇게 돌돌돌 천천히 녹여 먹은 사탕의 개수가 늘어난 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면 항상 혀가 노랗게 되어 있다.


레몬 사탕을 많이 먹으면 혀뿐만 아니라 식도나 그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소화기관들의 내벽도 노랗게 변해 있을까가 예전부터 궁금했다(아무래도 레몬 사탕을 먹고 내시경 검사를 받는 사람은 드물 것이므로). 물론 저 깊숙이까지 노란색이 침투하진 않겠지만 왠지 내 몸 안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면 누런 얼굴도 다시 원래의 혈색을 되찾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어릴 때 잠깐 한 적이 있다. 감기는 누런 색이고, 누런 색이 가벼운 노란색이 될 때까지 의식을 거듭하면 감기는 낫는다. 어릴 때의 미신이지만 지금도 마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우런 감기를 노란색 레몬 사탕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오늘 일기는 이렇게 끝내는 것이 좋겠다. 누렇게 뜬 얼굴과 비교해서 이상하게 활기를 띠는 샛노란 혀를 뜨거운 차를 마시며 녹인다. 사실 누우런 감기는 어느 정도 말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피부든 혀든, 색을 보고 그 사람이 건강한지 알아보았기 때문이다(지금도 쓰는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어쩌면 레몬 사탕 굴리기는 혀를 자주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의식일지도 모른다. 혀를 쭉 빼고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내내 기분이 조금 울렁거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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