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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세운4지구 논쟁에 대한 소견

by 도시관측소
경관은 총체적 경험입니다. 어느 한 지점의 시야각이나 투시도를 제시한다고 고층화로 인한 서울다운 경관 파괴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없습니다.


Written by 김세훈



한 잡지사에서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종묘 일대 세운 4지구의 높이 완화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에 대해 제 소견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Q. 현재 종묘–세운4지구 개발 논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핵심 쟁점은 급격한 높이 완화가 가져올 도심 역사경관의 훼손 가능성과 행정의 일관성 부재 두 가지입니다.


우선, 서울시가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대폭 완화한 것은 종묘에서 바깥을 본 경관만이 아닌, 청계천과 도심에서 4구역을 바라본 경관 측면에서도 문제입니다. 완화된 높이를 적용하면 종로 측 약 44m, 청계천 측에서 70m가 현재 기준보다 더 높아집니다. 이는 오피스 층수를 기준으로 +10~20층, 아파트 기준으로는 +15~25층에 육박합니다.


서울시는 이 정도 높이 증가가 종묘의 특정 지점에서 봤을 때 열린 경관을 가리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경관은 총체적 경험입니다. 특히 역사도심 경관은 유산에서 밖을 보는 것과 함께 밖에서 보이는 경관과 대중의 심상에 기억되는 경관 역시 중요합니다. 그 판단은 전문가 영역이자 동시에 보편적 시민들의 상식에 부합해야 합니다. 어느 한 지점의 시야각이나 투시도를 제시한다고 고층화로 인한 서울다운 경관 파괴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없습니다.


비록 해당 구역이 문화재보호법상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 밖에 위치한다고는 하나,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은 물리적 경계 너머까지 고려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역사도시경관(Historic Urban Landscape)' 접근법과 상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또한, 불과 10년도 안 되어 서울의 최상위 역사도심 계획이 '엄격 규제(2015년)'에서 '대폭 완화(2023년 서울도심기본계획)'로 180도 선회했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언론에서 이 부분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게 저는 의아합니다. 이런 급선회는 장기적인 도시 계획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개발 지연과 난개발의 반복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Q. 세계유산 종묘가 보유한 경관·역사적 가치가 도시계획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이라고 평가하십니까?


A. 종묘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조선 왕조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 의식을 올리는 장이자, 그를 둘러싼 공간의 고요함, 하늘로 열린 경관 등이 어우러진 장소입니다. 따라서 도시계획에서 종묘를 다룰 때는 물리적 실체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문화 유산과 국가적 상징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유네스코와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가 강조하듯, 세계유산 주변의 도시계획은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울시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늘이 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종묘의 가치는 그림자 문제를 넘어섭니다.


텅 빈 월대 위에서 느껴지는 공간감과 낮은 스카이라인의 조화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는 한 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는 대한민국의 자산이므로, 단기적 개발 논리보다 우선하여 고려되어야 합니다.



Q. 세운4지구 개발이 도심 활성화 또는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A. 저는 개인적으로 세운4구역의 정비사업 자체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낙후된 도심에 대해 막연한 낭만에 기대어 현재 모습 그대로 유지하거나, 소규모 필지 단위 정비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토지 소유자와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래서 대단위로 정비하여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초고층 개발만이 사업성을 담보한다'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용적률과 높이를 대폭 완화해 주지 않으면 사업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오히려 개발 주체의 기획 능력 부족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층수 완화나 용적률 상향만이 개발의 정답은 아닙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보이듯, 중층과 일부 저층, 고층이 섞이면서 밀도 높은 개발을 통해 충분한 사업성과 활력을 만들어내는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고층 개발로 종묘라는 독보적인 도시 브랜드를 훼손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서울의 경쟁력과 도시 가치를 떨어뜨려 오히려 도시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단순히 건물을 높게 짓는 것이 경제 활성화의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에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Q. 공공의 이익 관점에서 보존과 개발의 균형을 어떤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A. 보존과 개발의 균형은 세심한 높이 관리와 서울다운 휴먼 스케일의 회복에서 찾아야 합니다. 개발을 위한 최소 사업성을 고려하되, 종묘와 가까울수록 낮게 짓고 멀어질수록 높게 짓는 순응형 높이 계획이 가능합니다. 종묘에서 남산을 바라보는 핵심 조망축과 경관 자원을 세심하게 보호하면서 복합적인 개발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녹지생태도심' 전략, 즉 초고층 개발을 허용하는 대신 30% 이상의 부지를 녹지로 기부받는 방식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도심부의 공원녹지가 더 많아진다는 점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평면적인 녹지 면적은 늘어날지 몰라도, 거대한 마천루 사이에 낀 선형 녹지가 과연 지금의 자리에 제일 잘 어울리는 안락한 공간이 될지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세운4구역 자리에 종묘에서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남북 녹지축이 꼭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서울은 오래전부터 동서축(종로, 청계천, 을지로 등)이 강한 도시입니다. 동서로 교통과 상권의 축이 생기고, 남북으로 지형이 잘 연결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끝으로, 높이 완화를 해야 세운4구역의 개발이 가능하고 그 결과도 종묘 경관에 문제없다는 설명을 서울시의 최고 정책결정자가 판넬을 들고 나와 설명하는 모습이 제 눈에는 참 이상합니다. 이런 주장은 해당 토지 소유자 조합과 디벨로퍼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 서울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정치와 행정 변화와는 독립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과 가이드라인을 분명히 하고, 노후 도심에 대한 정비 활성화를 위해 신뢰할 만한 게임의 법칙을 제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개발을 준비하는 사업자 및 소유자들과 적극 협력하는 모습이 서울시의 역할입니다.


지난 10년 사이 서울의 도심 계획이 급변하면서 발생한 소유자와 주민들의 피해와 관련해서, 원인 제공자인 서울시가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행정의 일관성 부재로 인한 재산권 피해와 이를 핑계로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는 고층 개발을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논리로 접근해야 합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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