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돌아보기 09.
서울에 살게 된 지 20년도 넘었지만 아직 사투리를 고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이게 고쳐야 할 문제의 것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남편은 나의 말투를 ‘순화된 사투리’라 하는데, 표준어와 사투리가 섞였다고 ‘표투리’라 놀리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도 왜 사투리를 고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내가 조용히 있으면 ‘서울사람’처럼 보이는데 말하기 시작하면 난데없는 사투리 억양에 놀란다는 거다. ‘서울사람은 생긴 게 다른가요’라 되묻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런 대답을 준비해두곤 했다.
“싸울 때 유리하거든요.”
이런 생각은 어릴 적 동네 싸움을 구경했던 어느 날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서울 아저씨’와 우리 동네 아저씨의 주차 시비가 붙었다. “너 죽을래?”라는 선공격보다 “이~기, 고마 확!”이라며 되받아치는 모습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훨씬 위협적으로 느껴졌나 보다. 그러나 ‘사투리 승리론’은 부부사이에선 예외이겠다. 13년을 같이 살았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남편이 내 말투를 놀릴 때마다 나는 항상 발끈한다. 내가 반응할수록 더 놀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당한다. 남편은 나를 너무 잘 파악한다. 분하다.
하지만 ‘서울 사람이 따라 하는 경상도 사투리’도 만만치 않게 웃긴다는 걸 본인은 모르는 게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의 사투리 연기가 따라주지 못할 때가 있는데, 정말 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몰입이 되지 않는다. 화가 날 지경이다.
이렇듯 민감한 사투리일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서울에 살면서 사투리가 이분법적으로 취급될 때를 꽤 자주 겪었다. '우리동네' 친구끼리의 우스개소리지만, 마치 서울말은 끝만 올리면 된다는 식과 같은 공식을 보여준다. 어느쪽 사투리인지는 쉽게 구분한다는 자신감이다. 자신의 귀가 소머즈급인지 자랑하자는 경우가 대표적이겠다. 대략 이런 상황이다.
“혹시, 집이 경상도 쪽이세요?”
“아, 네!”
“오...어쩐지~ 사투리 억양이 살짝 있네요.(찡긋)”
... 어쩌란 말인가.
‘아아아니이이, 이건 사투리 '억양'이 아니라 그냥 사투리라니까요’라고 말해주고 싶다.하지만 그냥 웃어넘긴다. 서울살이는 내게 포커페이스를 잘도 훈련시켰다. “와, 들켰네요..”라며 상대의 질문 의도를 한껏 만족시켜주자. 속으로는 내가 잽을 날리기 직전의 복싱 스텝을 밟고 있는 중인 줄은 모를 것이다. 싸울 때 얼마나 유리한지 한번 보여줄까 싶기도 하다.
사투리에 대한 소머즈급 청력은 정작 같은 경상도 사람끼리 발동한다. 경북과 경남이 다르고, 같은 경북 내에서도 안동, 영주, 봉화와 같은 북쪽과 청도, 고령의 사투리는 조금씩 다르다. 경북의 각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대구이니, 대구만 해도 경북의 다양한 사투리가 모여있다. 유독 북쪽 말투가 센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조금 부드러운 편도 있다. ‘우리끼리’만 아는 사투리 감별법은 경상도 내에서만 통용된다. 내게도 부산, 경남의 사투리는 능력 밖의 넘사벽이다.
그러니 함부로 정의하지 마시길. 당신의 문장에 알 수 없는 높낮이를 갖다 붙인다고 다 같은 사투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투리는 생각보다 예민하다.
끝내 사투리를 고치지 못한 자의 사투리 옹호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