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난다. 어떤 날은 좀 더 눈이 일찍 떠지기도 하는데, 그 시간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편이다. 루틴은 일정하다. 일단 커피를 한잔 내리고 전자레인지에 핫팩을 데운다. 발과 무릎 위를 따뜻하게 하고 앉아서 어제 집중하지 못했던 책, 쓰다 말았던 글거리를 다시 시작한다. 오롯이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간절히 붙잡는 중이다. 나는 새벽이 좋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잠이 무척 많았다. 나의 ‘잠 레벨’은 중2 겨울방학이 절정이었는데, 자도 자도 졸려서 맨날 잤다. 그때 우리 오빠는 내게 코마(Coma) 같다며 놀려대곤 했다. 계속 잠만 잤던 그 겨울에 나는 키가 8센티미터가 컸다. 정말 겨울잠 자는 곰 같았다.
잠이 얕아지기 시작한 건 서울에 혼자 나와 살면서부터였다. 달리 깨워줄 사람이 없다는 긴장감 때문에 잠귀도 밝아졌다. 알람이 있지만, 늦으면 모두 내 탓이니 시계를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새벽 기상이 아예 습관으로 굳어졌다. 이전에는 아기를 재우면서 9시 반쯤 같이 잠들고 3시에 일어났었지만, 요즘은 10시반 11시쯤 잠자리에 들어 그래도 6시간 이상은 잔다. 밤 10시가 넘으면 슬슬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얼른 자야할 때이다.
하지만 나에겐 이렇듯 반가운 새벽도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열 살인데도 아직 나와 같이 자는 아들은, 이런 엄마 때문에 매번 새벽을 설친다. 분명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는데 어느새 따라 나와있다. 엄마가 옆에 없는 걸 어떻게 알아차렸을까 매번 놀라면서도, 그 안쓰러운 모습에 또 마음 한편이 아리다. 스탠드 불빛에 눈이 부셔서 한껏 인상을 쓰고 소파에 누워서는, 좀처럼 다시 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새벽 시간을 비몽사몽으로 시달렸다.
박사과정생으로 한창 바빴던 시절에는 포데기로 아기를 업고 새벽 책상에 앉곤 했다. 그러다가 슬슬 업기가 무거워질 정도로 크면서부터는 아예 우리 둘이 의자에 같이 앉아있다가, 아이가 졸기 시작하면 다시 눕혔다. 이제는 같이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커버렸지만, 책상에 앉아있는 동안 뒷자리 소파에 누워 내 뒤통수를 따갑게 하는 건 여전하다. 네 새벽을 설치게 했다는 미안함과 내 새벽을 방해받았다는 반대의 감정이 매번 교차하는 새벽이다.
그래도 이 새벽만큼은 간절하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과 같은 아침의 긴장감을 일부러 만들어낸다. 나는 아직 ‘독립’에 적응중이고, 새벽은 내게 자존감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내게 일어난 변화라면, 박사를 졸업하고 독립연구자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정 공동체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아직 낯설고 두렵다. 더군다나 책은 읽을수록 모르겠고, 알면 알수록 자꾸 더 알아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나오니, 아직도 ‘학생’인 것만 같다.
그동안 몇 번의 교수임용에서 고배를 마셨다. 제자를 둘 수 없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교수가 되지 않아도 강의는 할 수 있다. 육아와 일 사이에 어중간하게 나를 세워놓은 현실이 조금은 비겁해 보이지만, 새벽에 깨어있을 수 있다면 마냥 정체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나를 붙잡듯이, 악착같이 새벽을 붙잡는다.
어떤 이에게는 늦은 밤이, 어떤 이는 점심 휴식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하루 중 의미 있는 시간이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몇 시’라는 기준을 떠나 모두가 하루 중 간절한 일과가 있을 것이다.
아침이 밝았다. 이제 모두 일터로 나갈 시간. 일어나지도 않을 거면서 매번 같은 시간에 맞춰놓는 남편의 알람이 벌써 몇 번째 울리는 중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올림픽 대로에는 벌써 차들로 가득하다. 세상의 바쁜 모습에 내 마음도 다시 빨라진다.
그대,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