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긴 여름을 기다리며

by 도속도로

“저는 겨울요”.

매년 계절의 격변기마다 한 번씩은 꼭 주고받는 문답이 있다. 추위가 온 세상을 뒤덮는 12월, 함께 점심을 사러 가는 동료들의 표정이 사뭇 다채롭다. 누구는 얼어 죽겠다, 누구는 아직 괜찮네, 또 누군 한껏 아련해진 눈동자로 애꿎은 허공만 가른다. “현민님은 좋아하는 계절이 뭐야?”, 한껏 늘어뜨리려던 마음을 다독이고 겨울이요 답한다. 단출한 대답일수록 뒷얘기가 길다(고 믿기에). 또, 습하고 축축한 이야기 따위 되도록 참는 게 미덕 같기도 하고.


목도리와 더플코트, 연말 특유의 너그러운 분위기와 뽀드득대는 함박눈까지. 어려서부터 추위가 몰고 오는 싱싱한 포근함이 좋았다. 수줍은 겨울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코로 힘껏 빨아들일 때면 이유 모를 설렘과 기분 좋은 찬 냄새(흔히들 ‘수능 냄새’라고 부르는)를 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린 땐 추위를 몰랐다.

십수 살 더 먹은 지금도 여전히 겨울이 좋지만, 추위가 괴로워졌다. 한파를 참아내면서까지 입고 싶어 했던 무거운 코트와 두툼한 패딩이전처럼 예뻐 보이지 않아서일까. 요즘 들어 재킷이나 집업 같이 얇은 겉옷에 마음이 간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여름을 미워하는 건가? 하는···.


한 살 더 먹기가 무섭게 3월도 끝이 보인다. ‘나이 먹었다’는 말은 때때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보다 선명해졌다’는 뜻을 갖는다. 나 또한 앞자리가 3이 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명확해졌다. 바로 ‘향’, ‘향의 가치’에 대해서.

향이란 내게 오래도록 사치의 영역이었다. 유튜브 광고부터 라이센스 매거진들까지 여러 매체가 수시로 향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내 귀에는 ‘자고로 현대인이라면 몸에서 나는 향까지도 좋아야 한다’는 듯 고압적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뿌리박힌 생각이 최근 변했다.


어느 3월의 사무실. 내 뒤를 지나치는 김이사님의 카디건이 그날따라 유독 향기로웠다. 이사님은 평소 온화하면서도 다소 장난기가 있는 성격을 지녔는데 포근하면서도 살짝 달큰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묵직한 우디향이 그런 그의 캐릭터에 한층 입체감을 더해주었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슬그머니 이사님 곁에 가 향수 종류에 관해 물었다. 웃으며 말씀해 주셨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하. 기억나는 거라곤 브랜드명이 복잡했다 정도?

그 이후 나에게 향이란 ‘한 사람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겸손하게 드러내는 매개체’, ‘주변 사람은 둘째치고 나를 위해서 향유해야만 하는 것’이 됐다(아마도 꽤 오랜 시간 알게 모르게 향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코엑스를 통하는 짧은 출퇴근길 수많은 향수 가게를 마주치며 생각했다.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구나, 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더위를 잘 타는 것 이상으로 땀이 많다. (그저 바램일 가능성이 높지만) 수십 번의 여름을 견디며 나의 땀에 대해 (최대한)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해 냈다. 바로 내 땀은 냄새가 별로 안 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실험값을. 뭐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더는 상관없다. 앞으로 나는 ‘냄새 안 나는 사람’ 말고 ‘향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으니까.

올해는 4월부터 여름이라던데, 다가오는 주말에는 향수를 사러 서교동에 가봐야겠다. 살면서 마주하는 가장 긴 여름을, 생애 처음 반가이 맞이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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