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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24. 2016

[포토에세이] 포내리의 겨울, 그리고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포내리의 겨울, 그리고>



굉장히 춥다. 포내리는 더 춥겠지. 무수히 나부끼던 눈 내리는 풍경이 눈에 선하구나. 멀리 보이던 덕유산, 밤낮없이 코앞에 우뚝 선 적상산. 세수하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었어. 부엉부엉 부엉이 소리가 골짜기를 울렸어. 눈을 걷어내고 땅 속에 묻은 김치 꺼내어 찬밥에 척척 걸쳐 먹던 겨울밤, 별을 보고 달을 보며 오줌 누던 겨울밤, 추억이 날개처럼 펼쳐진다.


서울에 회의가 있어 아침 일찍 올라갔다가 조금 전 들어왔어. 못 다 읽은 뒷부분 마지막까지 다 읽고 이 글을 쓴다. 이야기마다 정성이 담겨 있고, 사진은 살아서 꿈틀거린다. 이렇게 편지로 감동을 나눌 것이 아니라 조만간 만나서 실컷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책은 네가 썼는데 내가 왜 이리 고마운지 모르겠다. 특히 표정이 살아 있는 어르신들의 사진은 그 자체로 작품이구나.


귀에 착착 닿아서 감기는 구수한 사투리와 어르신들 특유의 구어(口語)는 마치 내가 어르신들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세월이 지나면 사진에 담긴 물건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말 것인데, 주름진 어르신들의 얼굴, 오래된 농기구들, 솥단지와 맷돌, 부엌 아궁이 등 너는 사진으로 잘도 기록하였구나. 그것은 결코 글로 옮길 수 없지.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우리의 후대(後代)들은 이것들을 알기나 할까.


농촌에서 태어나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슴 따뜻해지는 삶의 이야기들이야. 나의 아내는 서울 출신이다. 농촌에서 경험되어진 것이 없는데도 너의 책을 읽고 공감 중이다. 대단하다고 감탄 연발이다. 나보다 먼저 책을 읽더니 일생에 한 권 쓰기도 힘든 책을 너는 두 권이나 썼다고 매우 칭찬한다. 네가 가고 있는 길을 너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느껴진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아내는 국어교사인데 너무 힘들어한다. 직업병인 성대 결절로 수술했고 관리하고 있다. 국어교육이 전공이라 남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네가 어린 시절에 되고 싶어 하던 교사의 꿈을 아내는 이루고 사는데, 만족을 못하니, 이런 것이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한다.


포내리 어르신들의 삶은 참으로 숭고하고 위대하다. 그 어떤 책 보다 어르신들의 삶이 주는 울림이 크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 그것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호사가 된 건 네 의지와 상관없는 선택이었다고 했지만, 그것은 다른 직업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니.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 그것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너의 책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의 작가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A.J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이라는 사람이 떠올랐어. 그는 의학을 전공하여 탄광촌에서 의사로 지내다가 꿈꾸던 소설가로 직업을 바꾸었지. ‘성채’라는 작품뿐 아니라 ‘천국의 열쇠’ 등 명작을 남겼고, 또 한 사람은 제임스 헤리엇(James Herriot)이라는 수의사야.


허물어진 외양간을 지키는 늙은 개와 소똥 냄새 풍기는 농부들의 정겨운 이야기, 동물에 대한 애정과 성실함으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가축들을 치료하면서 순박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만남에 대하여 글을 쓴 작가이지. 감동적인 이야기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어. 산골 오지에서 경험한 농민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간호사. 너는 그들과 유사한 활동을 하고 있구나.


비록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도,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고, 모진 삶을 견디고 살아내신 어르신들 앞에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느껴지는 밤이다. 나와 아내도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 무엇일까 함께 고민하며 살자고  이야기나누었다. 여기도 몹시 춥다. 현관문이 꽁꽁 얼어붙어서 망치로 얼음을 깼다. 코끝으로 들어온 송곳 바람이 폐부를 꿰뚫을 듯 뾰족하고 예리하다. 그런데 오히려 춥고 강렬한 것이 상쾌하다. 감기 조심하고, 또 소식 전하자.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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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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