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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Feb 01. 2016

[포토에세이] 흔들리는 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흔들리는 봄>



원장님께.

귀원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김**님이 최근 고혈압 소견을 보여 의뢰합니다(167/96, 158/95, 163/96mmHg). 보다 적절한 검사와 평가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되어 의뢰하오니 잘 부탁드립니다. 결과를 회신하여 주시면 고혈압 관리에 참고 자료로 활용할 것이며, 혈압조절 실패, 기타 이상 증상이 생길 경우에는 즉시 재의뢰하겠습니다. 보건진료소에서 투약 가능한 항고혈압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아테놀롤 50mg, 히드로클로르티아지드(KP) 25mg, 암로디핀오로트산염 5mg. 감사합니다.


소장님께

귀 보건진료소에서 의뢰한 김**님에 대한 진료소견회신서입니다. 본원 내원 시에도 수축기 혈압 150-160mmgHg, 이완기 혈압 90mmHg 정도로 측정되었습니다. 검사 결과와 24hrs ABP 시행결과 <의인성 고혈압>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혈압강하제 투여는 당장 필요해 보이지 않으며, 1년에 1회 정도 ABP 측정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의치 않을 경우, 집에서 보건진료소에서 규칙적인 혈압을 측정해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결과 첨부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과 전문의 선생님이 적어준 진료소견회신서를 들고 의뢰 닷새 만에 김 씨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소장님! 여기 있습니다. 그가 하얀 봉투를 내민다. Ambulatory Blood Pressure(ABP;24시간 활동 중 혈압)을 측정한 결과와 혈액, 소변 검사 결과가 들어 있다. ABP는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낮과 밤 동안 30분 간격으로 24시간 활동 중의 혈압을 측정한다. 결과지에는 스물여섯 번 측정된 혈압의 수치뿐 아니라 평균 통계치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래프까지 그려져 있었다.


김 씨는 오십 년 넘게 담배를 피우고 있고, 소주 한 병은 마셔야 하루가 마감되는 분이다. 그만큼 고집(!)이 세기도 하고, 당신 건강에 대하여 만만 자신하는 분이다. 그동안 일반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니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오던 그가 아내의 성화를 못 이겨 건강검진을 받았다. 결과를 해석해달라고 보건진료소에 결과지를 갖고 오셨었다. 혈압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그날의 혈압은 167/96mmHg, 다음날은 158/95mmHg이다. 이틀 간격으로 2주간 측정하였다.


널뛰기 하듯 정상과 경계 이상을 넘나드는 결과에 내 마음까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여러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고혈압진료의뢰서를 작성하였다. 하얀 가운 고혈압(White coat hypertension)이라는 결론이다. 평소에는 정상 혈압을 보이다가 병원 의료진이 혈압을 측정할 때에 발생하는 고혈압. 진료실에 들어서는 순간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특히 혈압을 잴 때에는 더욱 긴장하여 평소보다 혈압이 일시적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일컫는다.


진료실에서 혈압이 높은 경우여서 내과 전문의의 말씀대로 당장은 혈압강하제 투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나 고혈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성격이 유독 예민하거나 여성,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병원에서는 이들의 평상시 혈압이 평가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친밀한 의료기관이나 보건기관을 방문하여 혈압을 측정,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버님! 혈압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답장입니다. 아직 이야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긴장하고 있던 김 씨 얼굴에 화색이 돈다. 거 봐요, 내가 고혈압은 무슨 고혈압, 의사 양반들 가운이 문제라니까요. 그러게 말이예요. 다행이네요. 하긴 제가 병원에만 들어가면 가슴이 좀 답답해지는 게, 무슨 병인지, 마음 안 흔들리게 붙잡아 주는 약 있으면 좀 주세요. 아버님! 저는요,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와서 얄궂게 흔들어도 안 흔들리는, 마음 붙잡아주는, 그런 약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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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봄바람.

가운 좀 벗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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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천면 덕유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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