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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06. 2017

[포토에세이] 어쩌다 여든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어쩌다 여든


올해는 괜찮을랑가. 내년에는 어쩔랑가. 기운이 없어서 이제 농사도 못 짓겄다. 앞으로 몇 번이나 콩을 심고 나락을 심겄는가. 그렇다고 하늘만 보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어르신은 이미 죽음 너머에 계신다. 바람만 불어도 오늘 어떨랑가, 조금만 추워져도 오늘 내가 어떨랑가, 잠이 안 오면 오늘밤 어떨랑가. 입맛만 떨어져도 이제는 어떨랑갑다. 저토록 생과 사에 초연하시다니. 대나무같이  꼿꼿이 말라가면 서서히 돌아가는 것이지, 별 수 있간디. 낙엽도 즈 왔던 뿌리로 돌아가는디, 그거시 자연법이고 이친디, 모두 돌아가지.


가만히 지달리고 있으믄 어련히 알아서 죽여주실 것인디, 낼모레면 곧 저승으로 팔려갈 영감탱이가 뭔 지랄이랑가. 풍신같은 짓을 했능가 말여. 쪼깨만 참지 뭔 맘뽀여. 그렇게 꺾어놓고 지 혼자 가뻐리믄 산 사람은 어짜라고. 인자 그 각시는 인생 조졌구마잉. 팔자도 참말로 드럽네.


이른 아침 보건진료소에 오신 어르신들도 나도 창 넓은 진료실 창가에 붙어서서 앞길로 지나가는 이씨의 상여(喪輿)를 본다. 망자는 듣고 계실까. 잘 가소. 곧 만날것잉게 웃고 계시소! 참말로 덧없고 허무허네잉. 떠억 버틴 적상산 홍풍(紅風)이 분칠인디. 팔자가 참말로 드럽고마, 덧없네잉. 금메 말여, 누가 아니라능가.


  나는 병원 임상 근무 경험 없이 보건진료소에서 농촌 어르신들과 마주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당신들만의 은어나 농담 앞에서는 곤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어리숙한 나의 부족을 품어주신 아량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간호사이다. 대학병원, 중소병원에 근무하지 않는다. 개인의원에 근무하지도 않는다. 시군 보건소에 근무하지 않는다. 면 단위 보건지소도 아닌, 리(里) 단위 보건진료소에서 일한다. 의료취약 지역이라 불리는 자연 마을 몇 개를 묶어 설치 운영되고 있는 보건의료시설. 의료법 제25조 규정 즉,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정받은 지역에서 대통령령이 정한 경미한 의료행위를 수행한다.


  보건진료소는 농어촌에 있다. 병원이나 약국이 없는 오지에 있다. 의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계속하여 의사의 배치가 곤란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런 지역이다. 소위 ‘무의촌(無醫村)’에 설치 운영되는 보건의료기관이 보건진료소이다. 나는 국가가 지정한 의료기관에서 법으로 정한 직무교육을 받았고, 보건진료소에 배치되어 의료행위를 하는 간호사이다. 1970년대 말, 한국보건개발연구원에서 시행한 의료전달체계모형 연구 결과가 보건진료소 제도의 근간이다. 진료소장의 의료행위는 법의 시행령으로 명시하고 있다.


  상병상태를 판별하기 위한 진찰, 검사, 환자의 이송, 외상 등 흔히 볼 수 있는 환자의 치료 및 응급을 요하는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 상병의 악화 방지를 위한 처치, 만성병 환자의 요양지도 및 관리, 정상분만시의 개조, 예방접종, 의료행위에 따르는 의약품의 투여, 환경위생 및 영양개선에 관한 업무, 질병예방에 관한 업무, 모자보건에 관한 업무, 주민의 건강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에 대한 교육 및 지도에 관한 업무, 기타 주민의 건강증진에 관한 업무 등이 그것이다. 보건진료소가 처음 설치되던 1980년대 초반과 2020년을 바라보는 작금의 상황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많은 것이 변했고 변화 중이다.


  도로 사정과 교통 통신, 인구 구조 변화 등이 그 중 일부이다. 보건진료소까지 인터넷 광케이블이 들어왔고, 주민들은 승용차나 화물차(경운기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나)를 소유하고 있고, 전화와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눈부신 발전과는 반대로 인구 구조는 심각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여 있다. 고령화사회를 지나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오래전 일이다. 우리 지역 노인 인구는 47%를 육박한다. 초고령화 진입 예정이라는 2026년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니 앞서가는 농촌이라고 해야할까.


  상황을 반영하듯 나는 진료소에서 어르신을 많이 만난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갈 일 있어 서울역에 내려 사방으로 흩어져 제갈길을 오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특히 젊은 사람들), 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우리 동네에서 산다면 얼마나 활기가 넘칠까라는 상상을 갖기도 한다. 주민 700여 명 중 300여 명이 65세 이상이다. 전교생 20명이 채 안 되는 초등학교가 있고, 일요일이면 50여 명이 안되는 성도가 교회에 모인다.


  마을과 감싼 덕유산과 적상산이 있고, 산성에는 이조실록을 보관했다는 안국사가 있다. 읍내와 삼십 리 길 떨어진 무주호수 주변으로 안개가 피어오르기도 하는 물가 안쪽에 자리잡은 마을, 포내리이다. 보건진료소를 이용하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전체 이용자의 70-80%를 차지한다. 그만큼 어르신들을 많이 만난다. 급성상기도염, 퇴행성근골격관절통, 농작업에 따른 요통 등을 주로 호소하는 어르신들은 삭신이 쑤시고, 전국적으로 안 아픈 곳이 없응게 짭짤허니 약을 잘 지으라는 처방에 웃기도 하신다.


  보건진료소에서는 농기계 사고나 각종 접촉성피부염, 벌 쏘임이나 뱀 물림, 외상 등 증상에 따른 처방이나 처치가 주를 이루지만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을 듣는 경우도 있다. 듣다 보면 대부분 인생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담론일 것인데, 어르신들에 비하면 시간밥과 경험치가 턱없이 부족한 나는 어르신들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애써 공감하려고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우리 군에서는 만 65세가 되면 보건기관을 이용하는 경우 본인부담금 진료비가 면제된다.


  노인 인구는 갈씨락 늘고, 나랏돈도 없담서, 새끼들 세금만 많이 걷어갈 것잉게 없애야지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노인을 일흔 살부터 정해야한다, 무료 정치를 베풀어야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는디, 갸들이 그걸 없애것는가? 하시며 선심 행정을 꼬집기도 하고, 불필요한 병의원 방문이나 약물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것까지, 진료비 감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정책은 시행 중이다.


  진료기록부를 불러오면 모니터 상단에 연령이 표기된다. 꾸준한 약물 복용을 요하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30일을 처방하는 경우에는 본인부담금 12,600원이 감면된다. 어르신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일 것이다. 진료비는 안 주셔도 됩니다. 그래요? 공짜니까 좋아해야 하는 건지, 이제 노인축에 끼었으니 슬픈 일인지 모르겠구먼. 고맙습니다라는 사례를 받게 되는 경우에는 나의 권력과 재량으로 만든 조례가 아닌데, 민망하여라. 예순다섯의 고개를 넘어 칠순에 접어든 어르신들은 아래와 같은 고백이 많다. 어쩌다가 칠순이 되었을까. 한심하다. 아니, 벌써 일흔이라니. 어쩌다가 내가. 어르신들이 뒷짐 지고 서서 푸념처럼 뱉는 ‘어쩌다가’ 소리가 귀에 번득이면, ‘내 언젠가 이 꼴 날줄 알았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알려진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른다. 예순다섯이 당신에게서 멀리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어느새 ‘노인’이라는 이름표가 현실이 되었다는 말씀을 들을 때면, 나는 그 기분을 충분히 알 수 없어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던 해의 기분을 떠올린다.


  스물에서 서른, 서른에서 마흔, 마흔에서 쉰으로. 노인이 되다니. 아득하게 느껴졌었는데 어느덧 일흔 여든 문턱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다가 여든이 어르신들은 혼잣말처럼 고백하신다.


뭐하다 알흔이 넘었을꼬.

어쩌다봉게 여든이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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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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