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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Feb 02. 2017

[포토에세이] 미안하다는 그 말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미안하다는, 그 말>


“하나님!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제발 꿈속에서라도 아버지를 꼭 만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새벽이면 제단(祭壇)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정말이지 꿈속에서라도 아버지 뵙기를 소원했다. 살아계실 적 우리를 괴롭힌 아버지에게 일방적 몽중(夢中) 화해를 청(請)한 것이다. “너희를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미안하다.” 그 말씀만 해주신다면 온 마음 다해 당신을 용서하겠노라는 다짐이었다. 일 년이 가고, 오 년, 십 년이 지났지만, 그런 해후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토록 만나고 싶은 아버지, 꿈에서도 소원하는 아버지. 아버지는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에도 술에 취해 비틀거렸다. 지독한 알코올중독자인 채로 하늘길에 오르셨다. 어머니와 육 남매에게 좋은 추억보다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많이 더 크게 더 선명하게 각인(刻印)시켰다. 시대가 그러했고 가난이 죄여서 결핍이 만든 견디기 힘든 고통은 좋은 기억까지 상쇄(相殺)했는지도 모르겠다.


설날 아침이었다. 친정어머니께 세배를 마친 우리는 ‘덕담’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위들, 딸들, 외손자녀, 열여섯 명이 군사 대오(隊伍)처럼 진(陳)치고 마주 앉아 있었다. (‘어? 시간이 지났는데 어찌 아무 말씀이 없지?’라고 생각할 즈음이었다. 무겁게 입을 여신) “내가 느들헌티 참말로 미안하다. 나는 느들가치 학교도 못 댕기고 배운 것이 없다 보니 아는 것도 없니라. 딸만 줄줄 낳는 죄인이라 안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들었다. 사람 구실이나 햇것냐? 인제 와서 말인디, 느들헌티 참말로 미안하다.”


어머니가 왜 저러시는가. 한 마디 한 마디 화살 빗장처럼 착착 날아와 꽂힌다. “느들가치로 배운 것이 없다. 그러타보니 아는 것도 없다”시니 꽂힌 것에 더 망치질이다. “딸만 줄줄 낳는 죄인이라 안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들었다”는데 왜 그것이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인가.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사위들 딸들은 아연(啞然)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크기와 깊이라는 것은 가족 각자가 처했던 나이나 상황에 따라 체감의 도(度)가 다르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마흔을 넘은 중년에 닿은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발견한 사실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가 새삼 깨달았다. 나는 힘이 없고 결정권이 없었다는 변명이 구차했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렇게 ‘어른 아이’를 방어하기 위하여 나에게 유리한 대로(유리한 것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 억누르고 마음을 숨긴 채로 아닌 척 외면하며 제3의 대상에게 투사해버린 생각과 행동들. 방어의 방법과 강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강력해졌을 것이다.


상처에 상처를 잇대면서 상황을 실제보다 더 확대하여 해석하였을 것이다. 방어 기제(機制) 선을 넘나들며 과잉보호하려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이었겠지만 한편으로 무엇인가에 속아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무지했고 어리석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사방이 얼어붙은 얼음장 같아도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숨구녕. 잘못 건드렸다간 깨져버려 그 ‘숨질’이 잡아당겨 빠져들 것이니 당하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조심성이 필요한가 말이다.


부모님은 부부싸움을 많이 하셨다. 다투는 소리로 아침잠을 깼고, 다투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학교에 갔다. 어머니는, 나는 그만큼 아버지를 증오했다. 날마다 언제 어떻게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공부를 열심히 하여라. 새해 복 많이 받고 더 건강해라. 형제간에 우애 있이 살아라. 아빠 엄마 말씀 잘 들어라. 니들은 새끼들 잘 키워라.” 뻔한 덕담(德談)은 세뱃돈 봉투에 담으시고, ‘미안하다’는 말씀으로 사랑을 선포하신 어머니.


“엄마 아버지는 우리에게 공부 하라는 말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잖아!” “비싼 전깃불 켜놓고 공부한다고 술 취한 아버지는 툭하면 전기 계량기를 내렸었어.” “그것은 윗마루 높은 곳에 있었지. 손이 닿지 않는 위치였어.” “언니가 그걸 다시 올려줬잖아. ” “나는 촛불 켜 놓고 좁은 골방에서 몰래몰래 공부했어. 숨죽이면서 말이야. 하하하!” 아버지의 유죄(有罪)를 성토하다 유죄(宥罪)에 다다른 자매들이 모인 아침 단체 카톡방이 뜨겁다.


“언니! 엄마가 아버지 대신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어. 이제 다 지나간 일인데.” “언니! 엄마는 늘 다함 없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건만, 느들헌티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시다니. 두고두고 마음이 아프네.” “돌아가시면 못다 한 것만 기억나고 엄마를 보고 싶어 하겠지. 살아계실 때 잘하자. 그런데 말이지, 내 마음은 기뻤어! 엄마에게 더 죄송하네!” “나도 그랬어!” 결론에 이른 ‘미안하다’는 말의 크기와 깊이. 그것은 참 쉬운 듯 어려운 말 아닌가.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도 많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용서’를 구하는 뜻이 담겨 있어 더 말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마음 샘에 고여있다 흘러 눈물로 화(化) 된 말, 북소리처럼 우리 마음 둥둥 울려 버린, 꿈속에서라도 듣는다면 마음 다해 당신을 용서하겠노라고 약속하며 간구했던 그 말. 현실에서 속시원히 들었으니 눈 삭듯 얼음 삭듯 훈풍(薰風)이 불어야 옳지 않은가. 그러나 띤띤하도록 눈시울 붉게 달군 그 말 앞에 무력하다. 미.안.하.다. 이제 나의 기도 제목이 달라졌다. 꿈속에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먼저 안아드릴 것이다.


당신이여, 용서하소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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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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