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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un 30. 2017

[포토에세이] 그때가 그리고 지금이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그때가 그리고 지금이     


“오호! 다른 걸? 그때가 확실히 좋았네!” “일 년 사이에 이렇게 늙어졌단 말인가, 우울하구먼.” “요새는 한 달 전 사진만 봐도 다르더라니까.” 통영 여행 중에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주었다. 파일 정리하다 발견한 일 년 전 사진이었다. 친구들은 사진 속 피부까지 들먹이며 그때를 예찬했다. 십 년도 더 지난 것처럼 한바탕 수다를 떨더니 결국, 늙어버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날 아침이었다. 팔순 넘은 어르신이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소장님! 시어른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가?” 물으시기에 “시아버님은 일흔아홉이고, 어머님은 일흔다섯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아직 청춘이시구먼, 청춘이야!” “네? 칠순이 넘었는데 청춘이라니요?”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팔순 넘은 어르신이 “자네 나이가 몇인가?”하고 이 씨에게 물었다. “싸가지 없이 예순아홉입니다, 어르신!”하며 대답하자, “아직 새파랗구먼!”하는 것이었다.      


진료대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팔순 어르신이 칠순 어른에게 청춘이라 하고, 예순 어른에게 새파랗게 젊다며 “애기구먼, 애기여!”하신다. 그날 오후였다. ‘새파랗게 젊은, 예순두 살 애기’ 이 씨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나는 어디가 편찮으신지 여쭈었다. “목이 아파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침도 삼키기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감기가 들면 영 이기기 힘들구먼요. 나이 탓인가? 늙었나 봐요(웃음)!” 지난밤에는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고막(鼓膜) 체온을 달아보니 38.5도가 넘는다. 그야말로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는 ‘애기 어른’ 이 씨는 춥고도 뜨거운 밤을 보낸 것이다. 아흔과 여든, 일흔과 예순, 그리고 쉰. 열 묶음으로 나이를 넘나드는 세대가 모이는 진료대기실. 막 오십 문턱을 넘어선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팔순 어르신에게 여쭈었다. “어르신, 쉰을 막 넘긴 저는 어떤가요?” 그랬더니 “자네는 애기 중에 상애기지!”라고 대답하셨다. 오십 넘은 늙은 애기가 어디 있느냐고, 그것도 애기 중에 상애기라니요,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말았다.     


아흔 넘은 어르신이 여든 넘은 사람을 볼 때는 그가 청춘이고, 여든 넘은 어르신이 예순 넘은 사람에게 청춘이라 하신다. 그런데 말이다, 예순 넘은 사람은 예순이 늙었다고 한탄이고, 쉰이 넘은 나와 친구들은 쉰이 늙어버린 것이라고 한탄이다. 그렇다면 가장 젊은 때는 언제란 말인가. 앞뒤를 아울러 보면 결국, 지나간 그때가 바로 최고의 청춘이었다는 역설이 아닌가. 오늘보다 어저께가 젊었고 오늘은 내일보다 젊은 날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살아갈 나이보다 살아온 나이를 기준으로 너무나 일찌감치 늙어버린 것이라고 자결(自決) 판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건강 수명과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예순다섯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라 청춘이라고 말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살아갈 나이 중 가장 적은 나이, 그때가, 그리고 지금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울림이 아닐 수 없다.     


포내리에 살아도 서로 떨어진 마을 사람들이 자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동네에 돌아가거든 안부 전하라는 당부는 정겹다. 불과 일 년 전 사진을 보며 반색하는 나의 친구들 반응도 즐겁다. 나는 새파랗게 젊은 칠순 애기(!)들과 짱짱한 팔순 청춘들과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를 연다. 애기 중에 상애기인 내가 어찌 칠순 생(生)을 알 것이며, 팔순과 아흔 생(生)을 알겠는가는. 그러나 어저께는 어제로 가장 빛난 날이었고, 오늘은 오늘로 가장 빛난 날임을 기억해야겠다. 


나는 포내리에서 날마다 가장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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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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