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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26. 2015

[포토에세이] 휴게소에서 생긴 일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휴게소에서 생긴 일>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래간만에 모인 친척들은 피로연이 끝난 후 자리를 옮겨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함께 하였다. 자정이 넘어 무주로 출발하였다. 아들의 차에 오르자마자 술에 취한 그녀의 남편은 일찌감치 곯아 떨어졌고, 그녀는 뒷좌석에 앉았다.


망향휴게소에 도착하자 운전하던 아들은 커피를 사 오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두세 시간은 더 달려야 무주집에 도착할 것이니 화장실을 다녀오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친 후 제 자리로 돌아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들의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다.


사십여 명이 탄 관광버스가 덕유산휴게소에 들렀다. 나는 전직원 단합대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피곤함과 차멀미로 속이 불편했던 나는 휴게소에 들르기만을 기다리다 차가 멈추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 일을 마친 후 제 자리로 돌아와 주차장으로 돌아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내가 탔던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는 자신을 태우는 걸 잊어버리고 출발한 아들이 야속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아들을 따라가서 다음 휴게소에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갑과 휴대전화를 차 안에 두고 내린 탓에 행인의 전화를 빌려 아들과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은 낯선 이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차례 반복했으나 허사였다. 술에 취해 잠든 남편이, 뒤도 안 돌아보고 출발한 무심한 아들에게 슬그머니 화가 나더니 급기야 괘씸한 생각마저 들었단다.


그녀는 어느 젊은이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여 차를 탔고, 결국 죽암휴게소에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휴게소 직원에게 나도 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직원은 웃으면서 뜻밖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해주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일행을 놓친 경우도 있고, 어르신들이 주차 위치를 찾지 못하여 길을 헤매는 경우도 있으며, 혼자 운전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본인만 타면 일행을 두고 출발해버린다는 것이었다.


되돌아오기 힘든 고속도로에서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할까. 더구나 지갑과 휴대전화를 차에 두고 내린 경우에는 더욱 막막할 것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실제 이러한 일을 겪고 보니 모든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원을 확인하지 않고 출발한 일행에게 서운한 분(憤)을 품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내게 강원도나 서울 근처에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미아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며 핀잔을 준다.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느슨해진 주의력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매화꽃이 봄바람에 흩날리고, 흐드러진 벚꽃은 우리에게 손짓한다. 아름다운 계절, 좋은 사람 만나 꽃처럼 살겠노라는 백년가약 청첩장도 많다. 그야말로 꽃 피는 춘삼월(春三月), 주말마다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넘쳐 나고, 휴게소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머무른다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 앞자리 뒷자리에 앉은 사람을 확인하고 또 챙길 일이다.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요, 아들이요, 날마다 만나는 직장 동료일지라도 그들은 오래된 익숙함으로 봄에 취하고 단풍에 취한 당신을 어쩌면 고속도로 휴게소에 홀로 남겨놓고 갈 수도 있음을 기억하시라. 그녀와의 수다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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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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