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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23. 2015

[포토에세이] 못다 한 이야기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못다 한 이야기>


너  왔냐? 술에 취하여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감았던 눈을 힘겹게 뜨며 바라보더니 짧은 말씀만 하시고 그대로 스스륵 누우신다. 축 늘어진 아버지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들것에 옮겨진 아버지가 침상에서 경련을 하신다. 구급차에 다시 아버지를 옮겨 실었다. 아버지의 기도로 연결된 인공호흡 마스크를 쥐어짜며 함께 차에 올랐다. 원장님께서는 대학병원으로 후송해야겠다고 하셨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Expire 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는 응급실에 도착한 다음 날 오후 4시 즈음에 운명하셨다. 당신이 생전에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너 왔냐?’이다.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그때의 상황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동생들과 나눈다. 자신들은 보지 못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언니는 보았으니 부럽다고 말한다. 언니, 나는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뭐였더라. 기억도 안 나네.


온 국민을 통곡의 울음바다로 만들어버린 단원의 아이들. ‘우리 설마 이대로 가라앉는 것은 아니겠지?’라며 웃고 떠들며 어른들을 기다리던 아이들. 그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의지한 채 어른들을 기다리다가 가라앉아 버렸다. 배에서 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 봐 보내 놓는다. 사랑한다/왜...? 카톡을 안 보나? 했더니... 나도 아들~ 사랑한다/지금 너무 배가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어. 더 위험해/여러분, 사랑합니다. 살아서 만나자. 이따 만나자. 부디.../제발 부탁이야. 이 문자 본 애들 있다면 살아 있다고 말해줘/이게 마지막 문자라면 문자 보낸 애들 다 내가 사랑하는 애들이니깐 고마웠고 사랑했어/얘들아, 살아서 보자~ 전부 사랑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서로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마지막으로 남길 인사가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지도 못하고 스러진 꽃들이라 더 서럽고 섧다. 아직 아니 앞으로도 환청(幻聽)처럼 계속 들려올 것이다.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엄마와 아빠와 친구와 선생님을 챙겼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흔하고 익숙한 네 마디가 이토록 가슴 저리게 할 줄이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그대로 아이들은 정말 끝까지 서로 사랑했구나. 남은 자의 슬픔은 떠난 사랑이 멈춰진 시간 앞에 비수처럼 아픈 사랑으로 깊어간다. 위대한 사랑의 참혹한 이면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쏟아진 이야기들은 흔적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지는데,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 이유, 마지막 말에 유독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마지막이 진정한 끝이 아니라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는 마지막 문장, 영화에서 듣는 마지막 대사가 큰 울림으로 오래 남아 있듯. 격정의 순간이 마지막이 될 때, 소중한 것이 마지막이 될 때. 찬란했던 것들이 허망하고 힘없이 스러지는 마지막이 될 때... 나는 무슨 말을 남김으로 시작을 권할까.     


덥다.


때로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약속 없이 찾아가도 환히 웃으며 ‘너 왔냐?’ 하시며 반가이 맞이해줄 아버지가 새삼 그립다. 그에게로 가야겠다. 아버지! 여름인가 봐요,  너 왔냐? 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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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면 가당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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