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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22. 2015

[포토에세이] 고3이 된다는 것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고3이 된다는 것>



오늘은 어버이날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엄마!

태어난 계절에 가장 약하다고들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이번 5월의 시작은 너무 괴로웠어.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보려고 중간고사를 위하여 정말이지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아. 성적이 안 좋으니 다시는 아무것도 못 하겠고, 나는 뭘 해도 망할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여서 지난 며칠간 울다가 잠들고 그랬어. 결과만을 봐주는 우리나라 대학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제 괜찮아. 힘들었던 며칠 동안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적어보았어. 그중 하나가 첫 월급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서울에 가서 바닷가재를 사드리는 것이야. 어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장난처럼 말했던 것 같아. 기억 나? 이제 정말 멀지 않은 목표가 되어 버렸어.


내가 벌써 스무 살이라니.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접을 받아야 하니 무조건 꼭 건강해야 해. 며칠 전부터 스터디 플래너에 엄마와 아빠의 연애 시절 사진을 꽂아두고 날마다 보고 있어. 그냥 한 장에 불과한 작은 사진일 뿐인데, 보기만 해도  응원받는 기분이 들어. 날마다 펼쳐보게 되네. 고3이 된다는 것, 되기 전에는 뭐가 그리 대수라고 저렇게 난리인가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되고 보니, 엄청 고통스럽고 힘들더라(훌쩍). 학교에서도 친구들끼리 치열한 눈치싸움을 하게 되고, 친구를 경쟁자로 보고, 생각지도 않게 살은 많이 찌고, 직접 겪어보니 되게 당황스럽더라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니까.


작고 사소한 것들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다니. 그래서 낡고 오래된 엄마 아빠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됐나 봐. 윤리 선생님께서 세상에 ‘조건 없는 사랑’을 설명할 방법은 부모밖에 없다고 하셨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교환 이론’이라는 것이 있대. 인간관계를 '상호 호혜성의 원리'로 바라보는 관점이래. 인간은 자신의 이익, 때로는 보복을 위해서 인간관계를 맺어간다, 아무튼 그런 이론이야. 이 이론의 한계점은 부모의 사랑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래.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어.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와 아빠의 딸로 태어날 거야. 남들은 우리 가족이 멀리 떨어져 지내니 안타깝다고, 불행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빈자리 인해 오히려 소중함을 가늠해보기도 하면서 우리의 가족 관계가 더욱 소중해지고 애틋해졌다고 생각해. 암튼 그러니까 결론인데! 엄마와 아빠를 우주의 크기보다 더 사랑하고. 항상 감사하며, 엄마와 아빠의 딸인 것에 자랑스러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래.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분이라는 것. 늘 감사!

어버이날에,

사랑하는 작은 딸 드림.

.

.

.

산골에 사는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붉은 투구를 쓴 성난 전사(戰士)의 모습이었다. 머리 위로 들고 있던 집게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어. 얼굴보다 큰 접시에 얹힌 그는 이미 전투력을 상실하였음에도 등딱지는 거칠고 단단했지. 엄청나게 큰 왕새우 같기도 하고, 왕대게 같기도, 피규어 같기도 한. 첫 월급을 타면 딸이 나와 남편에게 사주겠다고 말하는 바닷가재, 로브스터 이야기.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내 얼굴을 할퀼 것 만 같던 그것. 대학을 졸업하고 보건진료소에 첫 발령을 받은 뒤 기관장님들과 부안 격포를 거쳐 전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파출소장님의 동생이 전주에서 이름 난 바닷가재 전문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아무리 봐도 부드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붉은 전사. 화려한 것들에 둘러싸인 그것을 어디부터 어떻게 해체(!)하여 먹어야 하는지 몰라 옆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나. 그 어리숙한 모습은 기관장님들에게 두고두고 시골 촌년 출세했다는 웃음거리가 되곤 했었다. 살이 꽉 찬 맑고 투명한 속살,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등딱지를 뒤집으니 몸통에 그대로 남아있던 짭조름한 바다의 향기는 더 말하여 무엇하리. 딸이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망설임이 없었지.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대학을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날이 올 거야. 네가  서울에 가거든 말이지


(나에게 서울은 성공의 상징이었고, 딸은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다), 첫 월급을 타거든 서울에서 가장 멋진 킹크랩 전문식당에 어미를 데려가 다오. 아빠와 함께 그 음식을 꼭 한 번 먹어보고 싶구나. 어버이날이 되었다. 지인들은 카카오톡에 이른 아침부터 자녀들에게 받은 메시지와 카네이션 꽃다발이 올라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맛있는 음식 사진들까지 올라오는데. 딸에게 꽃 사진 하나 없구나. 너는 손가락으로도 효도 못 하니? 옆구리를 찔렀다. 답장이 없다. 하긴 고3이니 봐준다!


퇴근 전 메일함을 열었다. 딸에게 편지가 와 있었다. 전문(前文)에 옮겨 적은 전문(全文)이 그것이다. 그래, 나도 딸과 함께 그를 조우할 날을 기다리겠다. 죽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 땅에서 고3이 된다는 것. 내가 잠든 사이에 적들의 책장이 넘어간다는 국시(國是)  무장으로 전쟁터에 투입된 유혈 낭자 전사들이여. 전장(戰場)의 의자에 앉을 때마다 가시 박히는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시간.


딸아! 목표를 위하여 달려라.

그리고 너! 기다려!

곧 갈게.

.

.

.

@적상면 포내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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