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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04. 2021

둘이 걷는 길

간호일기

둘이 걷는 길


“(……. 그러게요.) 제가 보고 싶어서 오셨군요. 여기 앉으세요.” 나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또 인사를 드렸다. 걸어서 보건진료소에 오신 권씨의 백발 위로 설분(雪粉)이 자자하다. “소장님, 제가 여기 왜 왔는가요? 와 놓고도 모르겄네.” 그 말씀은 언제나 같았다. 따뜻한 강냉이차 건네며 잠시 기다리시라 하였다. 몇몇 진료 후 당신 차례가 되었다. 어디가 아픈지 여쭙기도 전, “소장님, 제가 여기 왜 왔는가요? 와 놓고도 모르겄네.” 자웃자웃 멋쩍게 웃으신다. 당신은 보건진료소에 온 이유를 나에게 묻는다. ‘아…, 드디어 치매가 오신 것인가.’ 당황스러웠는데, 이제 좀 익숙해졌다 해야 할까. “제가 보고 싶어서 오셨겄지요! (웃음)”


  『코물 지침 남니다 닷새 아픔니다 가래약 주세요.』, 『허리가 작신작신 아픔니다 집사람이 잘 이저 버리싸서 적음니다 고마슴니다』. 이전처럼 남편의 증상을 연필로 적은 쪽지를 건네주시려니 기다리는데 내 얼굴만 바라보신다. 시선을 잠시 내렸다가 다시 바라보시기로, 어머니! 잊은 거 없으세요? 쪽지 주셔야죠! 나는 눈빛으로 독촉했지만 알아채지 못하신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한 달에 두어 번 혈압약 아니면 관절통 때문에 보건진료소에 오시는 권씨. 오늘이 며칠,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왜라는 현자감이나 지남력 따위는 내 것이 아니라는 양 앉아 계신다.


  다른 용건이 있으신가 하여 권씨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쪽지를 안 보내주셨네요. 누가, 어디가 아프신지요?” “내가 그렇게 일렀건만. 또 흘렀고만요. 점점 정신이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그새 또 잊었고만. 허허허. 날씨가 춥고요, 마당에 눈가루 좀 쓸고 들어왔더니 콧물이 나고 지침이 나싸서 잠을 못 잤고만요, 다른 건 없습니다. 열도 안 나고요. 그라고 거시기 집사람 혈압약이 서너 봉 안 남았응게 그것도 좀 챙기서 보내주면 고맙것습니다.”


  자동혈압계에 팔을 집어넣은 권씨 뒤에 서서 결과를 기다린다. 일 년 전만 해도, 지난여름에도 이러지 않았는데, 어르신 인지력 속에 진행되고 암운이 느껴진다. “소장님! 나는 다리에 힘이 없어 얼른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집사람은 다리는 멀쩡한데 생각허는 것이 불편합니다. 만약 우리집에 불이 나며는 나는 도망갈 수 없습니다. 집사람은 불 났다는 사실을 몰라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내가 고함을 쳐서 불이 났다고 알려줘야 합니다. 여보! 나를 빨리 업으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함께 도망갈 수 있을 테니까요. 소장님!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집사람은 내 다리를 대신하는 사람이고, 나는 집사람 머리를 대신하는 사람이지요. 한날한시 죽는 것이 소원인디, 어쩌것습니까, 소장님도 우리 좀 도와주세요. 가는 날까지 의지하고 살아야지요.”


  두 분이 손잡고 보건진료소 마당까지 재우재우 걸어오면, 김씨는 당신을 위한 처방보다 아내의 불편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더 많다. 겉으로 봐서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과 드러나지 않는 속사정들. 팔순 넘은 두 어르신 앞에 찻잔을 놓으면, 소장은 애기여 애기! 농담도 주셨다가, 저승이 고갯마루에 지달리니 어짜면 좋을지 큰일이라는 한숨도 주셨다가. 약 챙겨드리면 몇 발짝 가시다가 뒤돌아보며 다음 달에 또 봅시다, 언약을 주시기도 한다.


  또 다른 김씨 내외가 계신다. 보건진료소 마당에 주차 후 꼭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는 분이다. 큰 소리로 부르면 다 들릴 거리이건만, 소장! 어서 마당으로 나와 봐요! 하시는 것이다. 불편한 다리 때문이다. 폐쇄회로TV에 비친 모습으로 당신이 오신 것을 훤히 알지마는, 나는 모르는 척 기다렸다가 마중 나가듯 달려 나간다.


  그날은 뜻밖이었다. 자동차 뒷문을 열어보라는 것이다. 『스물한 살에 출향, 쉰아홉 해에 한 해를 더한 객지 생활, 자녀들이 새집을 마련하여 주어서 여든하나에 귀향했습니다. 이에 인사드립니다.』 뒷좌석에는 볼펜으로 눌러 쓴 인사말을 붙인 떡상자가 있었다. 시루떡 감싼 비닐에는 김이 서려 있고, 두 손으로 받아드니 온기(溫氣)가 심장으로 번져갔다. 이게 웬 떡입니까. 김씨 부부(夫婦)는 인근 마을이 고향이다. 타 지역에 사는 분이지만 딱히 용건이 없어도 보건진료소에 들르곤 하셨다. 찻잔이 식을 때까지, 이런 고민 있습니다, 저것이 걱정입니다, 나의 속내를 털어놓으면 가볍지 않은 덕담을 나눠주기도 하신다. 내외가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장터에서나 국숫집에서 우연히 만날 때면 부부는 늘 함께였다. 불편한 두 다리, 한 손엔 지팡이, 한 손엔 아내의 손. 느린 걸음걸이를 볼라치면 위태하고 불안하여 쫓아가 얼른 도와드리고 싶다. 그러나 십 년 묶음을 여덟 번 이상 살아온 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노련(老鍊)함은 뻐근한 숭고미(崇高美)를 준다. 김씨와 또 다른 김씨 부부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부부란 어떠해야 할까. 아름다운 늙음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서로 의지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오 헨리(O. Henry) 작가가 소설에 담은 ‘델리의 금발과 짐의 금시계’가 떠오른다. 아내는 금발을 팔아 시곗줄을 사고, 남편은 금시계를 팔아 머리빗을 샀다던가. 우리 부부는 노년에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어둠을 지나갈 때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돕고 의지하며 걸어가다 둘이 함께 새벽을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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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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