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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r 08. 2021

사랑으로

간호일기

사랑으로


불의 혀는 벽체를 지나 지붕을 핥고 있었다. 샛붉은 몸을 흔들어대더니 뼈대마저 물어뜯어 삼키고 있었다. 카톡 영상이 재생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화면을 확대했다. 너울거리는 화마(火魔)는 우주 지배자라도 된 듯 태우고 또 태우고 있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각이었다. 2월 20일 무주리조트 내 호텔 화재, 80여 명 대피. 강풍 타고 삽시간에 호텔 전체로 번져, 인명 피해 없어. 덕유산리조트 화재 5시간 만에 진화. 덕유산리조트 화재 초기대응 실패, 이유는. 인터넷 신문과 유튜브에는 뉴스가 연달아 올라왔다.

  “소장님! 무주리조트에 불이 났다면서요? 너무 슬픕니다. 소장님이 무주에 계시니 안부 전합니다. 티롤은 저에게 추억입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신혼여행 이후 한 번도 못 가봤지만, 마음속에 아름다운 사랑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복원하는데 찬조금 같은 거 받는다면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부부는 오로지 티롤호텔에서 숙박하려고 무주에 갔었거든요. 추억까지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경기도 평택시 모 보건진료소에 근무하는 소장님이 보낸 카톡이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스키로 맺은 인연, 무주! 우리 부부에게 무주는 사랑입니다. 연애 시절이었죠. 아주 오래전 조용필 산상 콘서트 보려고 갔었어요. 산정의 시원한 바람, 밤하늘에 흐르던 은빛 유성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서린 곳인데 화재 소식에 멀리서나마 안타까운 마음 전합니다. 무주에 가면 꼭 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무주를 알고, 구천동을 알고, 리조트를 아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가 무주에 살고 있다는 정회를 소환하여 안부를 물어왔다. 실상 나는 무주에 살고 있지만, 덕유산이나 리조트에 가는 일은 흔치 않다. 지인들이 여행이라도 오면 동행하는 정도이다. 이미 무주는 나의 고향이자 삶터이므로. 


  80년대 후반 여름, 쌍방울개발 직원들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해 가을에 구천보건진료소로 첫 발령을 받았다. 니조또가 머하는 것이냐고, 진료소에 오는 어르신들은 ‘재우 빤스 팔아가꼬 니조똔가 머싱가’를 짓는다고, 홍소 반 종소 반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회사 대단한 회사라드만! 더 좋은 날이 오겄지, 라고 하셨다. 대형 장비로 큰산 옆구리 미는 것쯤이야. 관계자들은 울창한 덕유의 숲을 모로 눕히는 사람이었다. 없던 길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다치는 사람들이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전기톱에 허벅지가 베이거나 나무가 할퀸 상처, 감기나 알레르기 등 크고 작은 부상과 경미한 증상으로 진료소 현관은 젖은 흙이 마를 새가 없었다. 봉합 세트를 미처 세척하기도 전에 다른 환자가 들어와 알코올 소독으로만 봉합한 적도 있었으니까.


  구천동 겨울은 아랫마을 산촌보다 일찍 도착한다. 어둠은 더 빨리 동네를 덮는다. 피서철만 지나면 현란한 여름밤 열기와 그 많던 사람이 순식간에 겨울잠에 들어버린 것처럼 고요해진다. 버스가 미어터질 듯 승객으로 꽉 차서, 그것도 모자라 좁은 창문으로 사람을 밀어 넣던 그때가 사람 사는 낭만 시절이었을까. 휴대폰 화재 동영상 속으로는 검은 뼈대 드러낸 참상이 오롯한데, 오래전 좋았던 경험이 회상되는 것은 기억의 일방통행 탓일 것이다.


  겨울이었다. “소장님! 우리 직원이 감기가 심해서 출근을 못 했는데, 왕진 좀 부탁합니다. 백암장 203호-당시 쌍방울개발에서는 덕유리 몇몇 모텔을 임대하여 직원 숙소로 사용하였다-입니다.” 눈길을 걸어갔다. 모텔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을 때, 열기로 뭉친 더운 짐이 밀려왔다. 오한에 떠는 ‘이 대리님’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십칠 년 만에 그날 그 이 대리님을 만났다. 밀린 안부가 터져 나왔다. 그때 그 김 대리님, 신 과장님, 탁 기사님, 마 과장님, 황 대리님 모두모두 안녕하신지요? 백혈병으로 고인이 되신 분. 암 투병 중인 분, 외국으로 가신 분, 누군가는 서울에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나누었다.


  바람 칼을 마주하며 눈길을 걸어간 것은 나의 기억이고, 링거까지 꽂아주고 구석에 앉아 수액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리더라는 것은 대리님 기억이다. 왕진 가방 둘러메고 눈길을 걸어간 나의 발걸음은 오늘의 만남을 위한 첫발자국이 아니었을까. 만날 사람은 힘들게 몸부림치지 않아도 기어이 만나고, 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닿게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웃었다. 추억은 나이를 먹지 않는 법. 구천보건진료소에서 만난 이 대리와 나는 추억 속에서 아직 어리고 젊었다.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가 얼마나 새삼스럽고 반가운 요즘인가. 고향마을 어귀 둥구나무처럼 거기 그 자리에 그냥 있어 주는 존재의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추억이다. 호텔에 머물렀던 마이클 잭슨도 낙서처럼 추억을 새겼다. 무주는 사랑! 언제나 사랑으로(KOREA IS GOD and MUJU is love Love always). 사랑에 머물지 말고 사랑을 사랑으로 완성하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사랑, 사랑, 사랑으로! 저 아린 화상, 참, 쓰리고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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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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