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일기
요레 요레! 웃는 날 되세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1월 29일 금요일 오전 8시 12분. 평화로운 일상이 속히 우리 곁으로 찾아오기를…, 1월 30일 토요일 오전 6시 40분. 가고 싶을 때 갈 곳이 있고 쉴 곳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울고 웃는 친구가 있으면 복 받은 인생입니다, 2월 2일 화요일 오전 6시 35분. 세상에 당신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2월 3일 수요일 오전 6시 26분.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월 4일 목요일 오전 5시 54분. 그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존중하고, 곁에 없을 때는 칭찬하고, 곤란할 때는 도와주고, 은혜는 잊지 말고, 베푼 것은 생각하지 말고, 서운한 것은 잊어버리십시오, 2월 11일 목요일 오전 6시 47분.
날이 밝자마자 휴대폰을 열어본다. 여전히 어르신의 메시지는 나의 아침보다 더 먼저 도착해 있다. 날마다 좋은 글과 사진을 전해주는 김씨. 매번 답글을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응답하면, 어르신께서는 “갠찬아요 나누고 시퍼서요” 라고 하신다. 나는 며칠 동안 응답하지 않음으로 응답하거나 ‘좋은 아침입니다’ 혹은 ‘청소 중입니다’라든가, 기분 따라 상황을 설명하는 답장을 보내곤 했다.
김씨는 우리 보건진료소 관할 지역 밖에서 오시는 78세 위암 환자이다. 병원에서 2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시한부 진단을 받았지만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오늘도 계속하고 계신다. 보건진료소에 오시면 관절통이나 근육통을 호소하며 처방을 원하신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몇 달간 무심하게 흘러갔다.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는 김씨. 미소가 맑고 환한데 목소리가 이전보다 거칠고, 힘이 빠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목에는 남자 손수건으로 스카프를 두르고 계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체중이 줄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어머나! 오래간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무슨 일인가가… 많이 있었군요?” (잠시 침묵) “…식도에 전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요새는 밥티 한알 삼키기도 어렵습니다.” 어르신 표정에는 얇은 행복이, 내 마음 속으로는 짜르르하게 아픈 가시가 번져 들었다. “저는 대단한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만, 평생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본 사람입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 없고요, 두렵지도 않습니다. 자식들도 제자리 잡았고, 저는 아플 만큼 아파봤고요, 암에 좋다는 약도 음식도 실컷 먹어봤고요.”
이어지는 말씀에 나는 청신경 뿐 아니라 온 몸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마치 삶을 초월한 사람이 설파할 교훈 같은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 내려놓았는데 딱 한 가지 후회가 있는데 말입니다, 하면서 이어지는 어르신의 이야기. “내 지은 죄 중에 씻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꾼으로 살면서 물을 땅을 오염시키고 어린 물고기들을 죽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농약을 치다가 남는 경우 약병을 씻어서 그냥 그대로 또랑에 버렸거든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었겠습니까?”
개구리도 죽었을 것이고, 물고기도 죽었을 것인데 그것이 결국 흙을 망쳐 지구 한 모퉁이를 병들게 만들고 떠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르신과 나는 농약회사가 농가에서 사용한 공병을 수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환경오염 예방을 위해서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화를 확장하였다. 옆에 앉아 묵묵히 듣고 있던 이씨 아주머니도 동의한다며 박수를 쳤다. 김씨의 말씀에 은연 중 브로니 웨어(호주 출신 작가)가 서술한 다섯 가지 후회를 떠올렸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동안 죽음을 앞둔 환자 곁에서 작가가 발견했다는 후회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른 사람의 부응보다 나 자신에게 더 진실했더라면,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됐는데, 내 감정과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를 더 냈었더라면, 친구들과 자주 연락했어야 했는데, 좀 더 자신에게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청각 뿐 아니라 온 신경의 촉수를 곤두세웠던 것은 혹여 다섯 가지 중 어디에 속할까 기대한 탓이다. 나는 앞에 일어나는 현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김씨의 후회를 재단하려는 어줍잖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자꾸 판단하려 드는 것일까. 아픈 몸을 다스리며 마음으로 만난 좋은 글을 매일 아침 나에게 보내주는 어르신. 환자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꾸준한 당신의 루틴이 건강한 하루를 시작하는 한 줄이 된다. 읽고 수긍하고 감사히 여긴다. “내가 보건진료소에 또 올 수 있을지, 다시 볼 수 있다면 행운으로 여기겠습니다.” 웃으며 돌아서는 어르신 뒷발치 아래로 드리운 기인 그림자, 현관을 빠져나간다.
7월 초록빛 가득 싱그러운 여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7월 1일 목요일 오전 5시 25분. 몸은 수시로 소리를 냅니다. 작고 미세하게, 때로는 크고 요란하게. 큰 소리가 나기 전에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행복 넘치는 하루 되세요, 7월 2일 금요일 오전 5시 49분. 박도순보건소장님! 어제는 감사하미다. 내 이야기를 드러 주셔서 고마씀니다 정말로 감사하미다, 7월 6일 화요일 오전 5시 36분. 카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