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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31. 2015

[포토에세이] 마음 내려놓기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마음 내려놓기>



그녀의 사진은 확실히 내 사진과 달랐다. 같은 디지털카메라인데 이유가 무엇일까. 그녀는 DSLR 카메라였고, 나는 콤팩트 카메라이었다. 그녀의 카메라와 렌즈 이름을 넣어 검색한 결과를 읽어내려 가는데 강풍에 의자가 훅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은 세계였다. 온라인 DSLR 사진동호회와 작품갤러리를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으로 접근하는 곳이라야 결혼한 주부들이 모이는 동호회에서 요리, 육아, 살림에 관한 정보들을 얻던 나에게 사진동호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은 자기 몸통만 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으며, 자칭 타칭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진 관련 전공자들도 많아서 카메라  장비쯤이야 ‘공돌이’ 정신에 입각한 그들은 해박한 각종 광학 이론으로 무장하여 유명 작가들의 작품 이야기만으로 며칠 밤 정도는 거뜬히 샐 수도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그 틈새에 끼어 처음으로 DSLR 카메라를 샀다. 18-70mm의 번들 렌즈를 물고 있던 ‘Minolta Dynax 5D’가 그것이었다. 거의 100만 원에 가까웠다. 5D 이상의 카메라를 모르던 나는 이 새로운 카메라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러던 중 사진 규격과 해상도(pixel) 개념도 몰랐던 나는 구천동 계곡에서 촬영한 단풍 사진을 모 동호회의 사진전시회에 제출하였다. 20*24인치 사진 인화를 위해서는 최소 3000*3600 pixel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시회장을 둘러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벽에 걸린 액자 속 내 사진은 해상도가 깨져 단풍보다 더 빨간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리고 있었다. 전시회를 망치게 만든 것 같아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당장 숨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더 큰 해상도를 지원하는 카메라를 구매하라며 지원하여 주었다. 4272*2848 pixel, 1,224만 화소의 위용을 자랑하던 Sony-Alpha 700이 두 번째 카메라이다. 측광 영역 40분할 TTL, 3.0인치 고정형 액정화면과 TFT LCD, 약 92.2만 Dot라는 스펙은 손바닥에 들어오는 Dynax 5D와는 감히 비교 불가였다.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된 ‘칠배기’는 인물, 풍경, 접사, 스포츠, 황혼, 야경 등을 무론한 영역에서 막강 권력을 발휘하며 오랜 친구가 되었다.


더 좋은 카메라로 이끌리는 마음을 절제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디자인과 성능으로 중무장하여 나타나는 신제품 군단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가진 카메라와 몇 안 되는 렌즈를 모두 팔아버리고 새로 사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반년도 안 되어 절반도 안 되는 중고가로 몰락하는 카메라. 때로 그러한 현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자체가 굴욕스럽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이었다.


1:1.5에서 진화한 1:1, 풀 프레임 카메라와의 밀당이 다시 시작되었다. 첫 카메라 5D는 가격 대비 야무지고 사진 잘 찍어준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광학계에서 아웃된 전설로 남아 있다. 여전히 좋은 장비를 가진 사진가를 보면 부럽다.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취미 생활로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다. 사진가에게 얼마나 비싼 카메라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더 끝없는 인간의 욕망에 브레이크가 없다.


타사 제품과 자사 제품의 장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메일과 쪽지로 알려주는 회원, 이제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의 문을 닫았고, 더 이상의 뽐뿌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진가의 로망이요, 사진가의 아내와 남편들에게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카메라와 장비들. 이제 그 오래된 지름을 멈추겠노라고. 모피코트를 입고 수영을 할 수는 없지. 내게 이만하면 충분히 충분하여 마음을 내려놓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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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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