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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Oct 30. 2015

[포토에세이] 시월에 취하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시월에 취하다>



정말 많이 열렸네. 저 은행나무 부부는 저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사랑을 나누었을까. 동료와 함께 적상산(赤裳山)에 올랐다. 가을이면 고운 단풍이 여인의 붉은 치마에 비유된다.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던 동료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나에게 물었다. 푹신한 낙엽 침낭에서 하늘을 우러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파랑 하늘, 빨강 노랑이 햇살에 흔드니 가을이 홍시가 되어간다.


땅 위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은행나무 부부는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캄캄한 땅속에서 만났을 거야. 그리워하면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잖아. 그런데 땅 속에는 은행나무 뿌리만 있었을까. 그들의 사랑을 엿보던 단풍나무가 깜짝 놀라 얼굴 붉히는 것 좀 보아. 타오르다못해 꼬고 있어. 몰래하는 사랑은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지.


우리의 수다를 가을이 듣고 있을거야. 권태로운 일상은 일탈이 되고, 경쾌한 웃음소리는 메아리가 된다. 죄 없는 단풍나무를 사랑에 겨운 은행나무 신방을 엿보는 방탕녀로 정죄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들었다. 배낭에 들어있는 물병과 감귤 몇 개가 흔들린다. 푹신한 낙엽길을 걷고 올라 안국사 근처에 이르렀다.


단풍보다 고운 사람 물결이 넘실대고, 뒤엉킨 대형버스와 승용차는 적상산이 좁기만 하다. 서창(西窓)으로 내려오며 사방을 둘러보는데 탄성을 지르기 바쁘다. 유난히 단풍이 곱고 아름답다. 신(神)이 빚지 않고서야. 우리의 연약한 시력의 한계를 안타까워하며 가을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연신 셔터를 눌렀다.


생강나무 잎을 어루만지며 말을 걸고, 가을 시(詩)를 주고 받았다. 노래를 읊조리며 만든 이의 감성에 이입하였다. 단풍에 뺨을 맞았다는 시인. 피라미 갈겨니 메기까지 푹푹 고아 수제비가 구름같이 떠오르는 어죽(魚粥)에 반주 몇 대접. 휘청거리는 단풍에 취한 낭만파처럼 평상에 누웠다가 벌건 뺨에 손자국 선명한 애기과부 손바닥 같은, 얼큰한 시월이라는 시를 아시는가.


단풍잎을 대고 누웠는데 잠시 딴살림 차렸던 것 마냥 뭣에 쫓기기나 한 듯 뒷골이 얼얼하여 내려오는 내내 흙길도 출렁거렸다는, 아! 상상만으로도 단풍주에 취한 시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으시는가. 해마다 우리 곁에 왔던 가을이었을 텐데. 예전에는 제대로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아. 올 단풍은 유난히 곱네. 앞으로 내가 이 산길을 몇 번이나 더 오를 수 있을까.


농탁(農濁)한 가을주를 잔에 붓고, 봄과 여름 이야기를 나누고, 가을에 이르러 벌건 취기가 올랐다. 적상산 아래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품에 깊히 안겨 본 적이 있었던가.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설악산 지리산을 오르기 위하여 시간을 아끼고 비용을 쏟았던 일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우리의 미련한 모습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럽다.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 ‘붉은 치마산’을 이제야 올라


눈부신 단풍 풍요에 출렁이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를 마감한 느낌이다. 살아갈 동안 만날 어려움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충전되었어. 단풍에 뺨 맞고 뒷골이 얼얼하여 내려오는 내내 흙길도 출렁거렸다고, 한쪽 뺨 벌겋게 얻어터져야 후끈한 뒷맛으로 올 겨울 얼음고개를 넘지 않겠느냐며 단풍잎 한 장에서도 이토록 요염한 관능을 느낀 시인.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충만한 행복에 젖은 우리.


함께 하는 것으로 힘이 되는 우리, 겉으로 드러난 단풍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멀리 떨어져 땅 속 깊은 곳에서 사랑을 나누더니,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산(山)이 내리는 은밀한 보약 한 첩, 정녕 가신다면 갈 테면 가라지, 붙잡나 봐라,


시월아. 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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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북창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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