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참 미련하고 무책임한 사람이구나. 나는.

by 심쓴삘

나이가 어느덧 40대 중반.

긴 경력단절을 끝내고, 최저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시작했었다.

주휴수당이 발생하지 않는 주 14시간 사무직.

사무직은 끝이 없어 늘 초과근무를 했지만,

가스라이팅이었는지 낮은 자존감이었는지 시간 안에 해내지 못한 나의 무능 탓이라 생각해 그리 억울하진 않았다. 경력단절 10년이라는 아픈 단점이 있었기에.

나중에 그만둘 때서야 나에게 정규직을 제안했지만, 나를 더 이상 갈아 넣고 싶지 않았다.


그 후 근무시간이 좀 더 긴 학원으로 옮겨 데스크를 맡게 됐다.

하지만 나의 몹쓸 자존심에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컴퓨터로 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하겠단 말이다. 모르면 배우면서 얼마든 시간을 쓰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침마다 학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배달용기들, 과자 봉지와 남은 잔반들..

원장님네 가족이 매일 저녁에 거기서 뭘 드시나 보다.

그걸 치우다 보니 나이 많은 나를 써주심에 감지덕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쉽게 마음이 안 먹어졌다.

그래서 그만두고.


그다음 근무지는 그나마 경력단절 전의 업무와 비슷한 사무직.

컴퓨터로 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으니 열심히 했고, 점점 인정받고 성장했다.

여기서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쪽 분야도 조금씩 힘들어지면서 점점 사무실을 벗어난 일들이 많아지고, 해본 적 없는 영역을 책임져야 하고, 대신해서 싸워야 하고, 대신해서 사과해야 하고..


어느 날 불현듯 고개 들어보니

점점 끓어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시간 가는지도 모르게 뜨거운 40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탈출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제는, 이직이라는 걸 꿈꿀 수 있을까.

앱을 통해 다른 곳에 입사지원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허허, 이 팀 팀장보다 내가 나이 많을 텐데..'


그렇다고 기술을 배우는 것도,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닌 나도 참...

여기에 넋두리를 써놓고 읽어보니 참 미련하고 무책임한 사람이구나. 나는.


Gemini_Generated_Image_x7848ux7848ux784.png

* 구글 Gemini.

나는 이 사람만큼 단아하고 예쁘지 않지만, 표정은 내 마음 그대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우도 작가의 '우두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