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시리즈
이사 온 집은 스마트하다.
홈네트워크로 인해 월패드와 휴대폰으로도 집의 설비가 관리된다.
잘 관리하려면 사용방법을 잘 습득해야 한다.
집을 계약할 때, 전주인으로부터 아파트 시설 관련 책자와 파일집을 받았다.
아코디언 파일집에는 월패드부터 가스레인지까지 모든 설비에 대한 사용설명서가 들어있었다.
이걸 다 읽는데만 해도 하루가 걸릴 것 같았다.
20년 전만 해도 휴대폰을 새로 사면 밤새도록 사용설명서를 보면서 기능을 모두 익히는 게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기능을 습득한다는 게 취미도 흥미도 재능도 없다.
몸과 뇌가 게을러진 탓일 거다.
그렇게 한 달을 사니 관리비고지서가 날아왔다.
전기세가 빌라에서 살 때의 2배가 나왔다.
문득 대기전력 스위치가 떠올랐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지나서야 대기전력 스위치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읽어봤으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그냥 오토모드로 .
자동으로 알아서 차단하고 공급하고 하겠지.
그리고 아침,
아이들이 방학이라 점심 반찬을 보온밥통에 넣어두고 아침을 차리려는데,
아뿔싸..
밥솥의 밥이 온기를 잃었다.
대기전력을 잘못 설정해 밥솥의 전기가 꺼진 것이다.
서둘러 냉장고를 여니 다행이 냉장고는 작동 중이었다.
스마트하지 않은 내가 스마트해질 수 있을까.
세상은 이렇게나 변해가는데, 나는 왜 변하지 못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