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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챕터 1: 장례식장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윤영자예요. 올해 예순셋이고요, 강남구에서 반찬가게를 30년째 하고 있어요. 남편은 10년 전에 먼저 가셨고, 딸 지은이와 아들 성호 둘이 제 전부예요.
이 이야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일어난 일이에요. 엄마를 떠나보낸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거든요. 82세까지 건강하게 사시던 엄마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음 정리가 전혀 안 됐어요.
그날도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어요. 장례식 마무리 정리할 게 산더미처럼 많았거든요. 화환 정리하고, 조의금 정리하고, 친척들한테 인사드리고... 정말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어요.
오후 3시쯤 됐을 때였어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깜짝 놀랄 일이 생겼거든요. 저는 조카 한 명이 오지 않은 게 좀 아쉽긴 했어요. 이모네 딸 미정이요. 어릴 때 자주 우리 집에 왔던 아이인데, 20년도 넘게 연락이 없었거든요.
"이모! 이모 맞죠?"
뒤돌아보니까 누군가 저를 부르더라고요. 처음엔 누군지 몰랐어요. 까만색 정장에 반짝반짝한 목걸이, 팔찌까지 차고 있는 젊은 여자분이 서 계시더라고요. 화장도 진하게 하고, 머리도 파마해서 완전 도시 여자 스타일이었어요.
"어? 혹시..."
"미정이에요! 박미정! 어릴 때 이모네 집에서 밥 얻어먹던 그 미정이요!"
아, 맞다! 우리 조카 미정이구나. 그런데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 마지막에 본 게 언제더라...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20년도 넘었을 거예요.
"어머, 미정아! 너 이렇게 컸구나. 이모가 못 알아봤네."
미정이가 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면서 눈시울을 적시더라고요.
"이모,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늦게 들었어요. 정말 죄송해요. 많이 힘드시죠?"
진짜 오랜만에 보는 조카라 반가웠어요. 어릴 때 정말 말괄량이였는데, 이제 어엿한 여자가 다 됐더라고요.
"미정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연락도 없고..."
"이모, 저 요즘 서울에서 보험 쪽 일해요. 사람들이 저보고 '보험왕'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헤헤."
보험왕이라니. 뭔가 굉장해 보이네요. 어릴 때 그 말괄량이가 이렇게 성공했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어머, 대단하네. 보험이면 돈도 많이 벌겠다."
"그럭저럭 살 만해요. 이모, 근데 정말 힘드시죠? 할머니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보험 얘기를 하니까 좀 어색했지만, 워낙 오랜만에 본 조카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미정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제 귀에 가까이 와서 속삭이는 거예요.
"이모, 상속 정리하신다면서요?"
순간 깜짝 놀랐어요. 상속 얘기를 어떻게 알았지? 아직 아무한테도 자세한 얘기 안 했는데.
"어? 넌 그걸 어떻게..."
"아이고, 이모. 이런 일 생기면 다들 그런 거 아니에요. 근데 그냥 은행에 넣어놓으면 뭐해요. 요즘 금리도 낮고... 제가 좀 굴려드릴까요? 안전하게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더라고요. 엄마 장례식도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속 얘기라니. 아무리 조카라지만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미정아, 그런 얘기는 나중에..."
"이모, 저 진짜 잘해요. 믿어보세요. 요즘 제가 담당하는 고객들 수익률이 어마어마해요. 몇 달만 맡겨주시면 두 배로 만들어드릴 수 있어요."
두 배라고? 솔직히 마음이 흔들렸어요. 엄마가 평생 힘들게 모으신 돈인데, 은행에만 넣어놔도 되나 싶었거든요.
엄마는 평생 검소하게 사셨어요. 용돈 드리려고 해도 "괜찮다, 괜찮다" 하시면서 안 받으시고.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까 통장에 꽤 많은 돈이 있더라고요. 얼마나 아껴 사셨는지...
"미정아, 근데..."
"이모, 걱정 마세요. 제가 이 일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고객들 재산 관리 전문적으로 하거든요."
미정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까, 정말 전문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봤던 그 말괄량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당하더라고요.
"이모, 제 명함이에요."
미정이가 반짝반짝한 금박 명함을 주더라고요. '프리미엄 자산관리 전문가 박미정'이라고 써 있었어요.
"우와, 대단하네."
"이모, 요즘은 돈을 그냥 놔두면 안 돼요. 물가도 오르고, 은행 금리는 바닥이고... 제대로 굴려야 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어요. 요즘 뉴스 보면 물가 오른다는 얘기만 나오고, 은행 금리는 정말 낮으니까.
"미정아, 그런데 위험하지는 않아?"
"이모, 제가 누구예요? 어릴 때부터 이모한테 많은 걸 배웠잖아요. 제가 이모를 속이겠어요?"
그렇긴 하죠. 어릴 때 정말 우리 집에 자주 왔었거든요. 이모가 장사하느라 바쁘실 때면 미정이를 맡겨놓고 가시곤 했어요.
"이모,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락드릴게요."
미정이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친척들한테 인사하러 갔어요. 근데 계속 제가 신경 쓰이더라고요.
# 챕터 2: 집 앞에 온 꽃바구니
장례식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지 이틀 뒤였어요. 그동안 정말 정신없이 바빴거든요. 친척들 뒤처리하고, 엄마 유품 정리하고, 서류들 정리하고...
특히 상속 관련 서류들이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은행도 가야 하고, 구청도 가야 하고. 이런 일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었더니, 큰 꽃바구니가 놓여 있더라고요. 누가 보낸 건지 궁금해서 카드를 봤어요.
'영자 이모께, 힘내세요 - 미정 올림'
아, 미정이가 보낸 거구나. 그런데 꽃 사이에는 또 다른 작은 카드가 꽂혀 있었어요.
'이모, 상속금 은행에만 두지 마세요. 세금만 더 나가요. 제가 안전하게 굴려드릴게요. 꼭 연락 주세요. 급해요!'
꽃향기보다 그 글씨가 더 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니, 장례식 끝나자마자 이런 걸 보내다니...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미정이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어요. '세금만 더 나간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더라고요.
실제로 며칠 전에 세무사 선생님한테 갔을 때도 그런 얘기를 들었거든요. 상속세도 내야 하고, 그냥 놔두면 여러 가지 세금이 나간다고...
이상한 게, 자꾸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거예요. '안전하게 굴려준다.' '급해요.'
솔직히 말하면, 엄마 돈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거든요. 엄마가 평생 힘들게 모으신 돈인데, 제가 잘못 관리해서 손해라도 보면 어떡하지?
그냥 놔둬도 되나?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미정이가 전문가라고 하는데, 진짜 두 배로 만들어준다면...
오후에 딸 지은이가 회사에서 돌아와서 그 꽃바구니를 보더니 인상을 팍 찌푸리더라고요.
"엄마, 이거 뭐예요? 꽃이 예쁘긴 한데 너무 화려한 거 아니에요?"
"아, 미정이가 보낸 거야."
"미정이? 누구요?"
"네 이모네 딸. 어릴 때 우리 집에 자주 오던 애 기억 안 나?"
지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카드를 읽어보더라고요.
"엄마, 이거 봤어요?"
"응, 봤어."
지은이가 카드를 다시 자세히 읽어보더니 한숨을 푹 쉬더라고요.
"엄마, 이런 거 조심하세요. 장례식 끝나자마자 돈 얘기 하는 사람 믿으면 안 돼요."
"그래도 친척인데... 어릴 때부터 알던 애고."
"친척이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잖아요, 엄마. 뉴스 안 보세요? 보험 사기 얼마나 많은데요."
지은이는 직장에서 회계 일을 하다 보니까 이런 걸 더 잘 아는 것 같기도 했어요.
"엄마, 특히 상속금 받았다는 소식 들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붙어요. 조심하셔야 해요."
그런데도 자꾸만 미정이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어릴 때 그 아이가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거든요. 좀 개구쟁이긴 했지만.
"지은아, 그래도 미정이는..."
"엄마, 사람은 변해요. 20년 동안 못 봤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친척이니까 나쁜 마음은 아닐 거 아니에요?
저녁 먹으면서도 계속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 돈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은행에만 넣어두는 게 맞나? 아니면 뭔가 투자를 해야 하나?
# 챕터 3: 가족 회의에서 벌어진 일
그날 저녁, 아들 성호도 집에 와서 온 가족이 모였어요. 엄마 상속 정리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성호는 IT회사에서 일하는데, 평소에 경제나 투자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이런 일에 대해서도 나름 의견이 있더라고요.
"엄마, 할머니 일로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상속금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직 잘 모르겠어. 너무 큰 돈이라..."
실제로 엄마가 남겨주신 돈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적금, 예금, 보험금까지 해서 꽤 큰 금액이었거든요.
"엄마, 그냥 정기예금 넣으시면 돼요. 괜히 다른 데 투자하려고 하지 마세요. 요즘 사기 많아요."
성호가 딱 잘라서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성호야, 미정이가 그러는데..."
"미정이? 누구요?"
지은이가 대신 설명해줬어요.
"이모네 딸이래. 보험 일 한다면서 할머니 돈 굴려주겠다고 했대."
성호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엄마! 그런 말에 넘어가시면 안 돼요! 친척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야, 성호야. 목소리 좀 낮춰. 이웃집에서 들어."
"아니에요, 엄마. 이거 진짜 위험해요. 남보다 못한 게 친척이라니까!"
지은이도 거들더라고요.
"맞아요, 엄마. 장례식장에서 돈 얘기부터 꺼내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요?"
"그래도 애들아, 미정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 어릴 때가 언젠데요? 20년도 넘었잖아요!"
성호가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검색하더라고요.
"엄마, 여기 보세요. 요즘 이런 사기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핸드폰 화면에는 뉴스 기사들이 쭉 나와 있더라고요. '친족 사기 급증', '상속금 노린 신종 사기' 이런 제목들이...
"특히 나이 드신 분들 타겟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친척이라고 하면서 접근해서 신뢰를 얻은 다음에 돈을 가져가는 거예요."
지은이도 덧붙였어요.
"엄마, 미정이가 진짜 보험회사에서 일하는지도 확인 안 됐잖아요."
"그럼 확인해보면 되지."
"엄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설사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게 말이 안 돼요."
성호가 계산기를 꺼내서 뭔가 계산해보더라고요.
"엄마, 지금 은행 금리가 2%도 안 되는데, 6개월에 30%씩 수익이 난다고요? 이거 완전 말이 안 되는 숫자예요."
"그럼 거짓말이라는 얘기야?"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위험한 투자일 거예요."
아이들이 그렇게 극구 반대하니까, 저도 좀 찜찜해지긴 했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말 돈을 그냥 놔둬도 되나 싶더라고요.
"엄마,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 더 나아요! 친척이라고 하면서 접근하는 게 제일 위험해요!"
성호가 목청껏 소리쳤어요.
"그래도..."
"엄마, 할머니가 평생 힘들게 모으신 돈인데, 그렇게 쉽게 남한테 맡기시면 어떡해요?"
지은이 말이 가슴에 확 와 닿았어요. 정말 그렇네요. 엄마가 평생 힘들게 모으신 돈인데...
은행 금리는 워낙 낮고, 물가는 자꾸 오르고. 엄마가 평생 모으신 돈인데, 뭔가 더 잘 활용할 방법이 있다면...
"엄마 지금 뭐 생각하고 계세요?"
지은이가 제 표정을 보고 물어보더라고요.
"아니야, 그냥... 엄마가 남겨주신 돈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서."
"엄마, 잘 관리하는 게 위험한 투자 하는 게 아니에요. 안전하게 지키는 게 잘 관리하는 거예요."
성호 말도 맞는 것 같고...
"엄마, 설마 진짜 미정이 말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죠?"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여러 가지 생각해보는 거지."
"엄마, 절대 안 돼요. 제발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그렇게 반대하니까 더 이상 얘기는 못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어요.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이들 말도 맞지만, 미정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챕터 4: 카페에서 만난 미정이
결국 며칠 뒤에 미정이한테 연락했어요. 아이들은 몰래요.
"미정아, 이모야."
"어머, 이모! 연락 주실 줄 알았어요. 꽃바구니 받으셨죠?"
"응, 고마워. 그런데 미정아..."
"이모, 언제 시간 되세요? 자세히 설명해드릴게요."
"내일 오후에 잠깐 만날까?"
"좋아요! 역 앞 카페 아시죠? 거기서 만나요. 2시에요."
다음날 오후, 아이들 몰래 카페에 갔어요. 사실 좀 찜찜하긴 했는데, 그냥 얘기만 들어보는 거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페에 갔더니, 미정이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옆에는 큰 서류가방을 두고 있었어요.
"이모, 여기 앉으세요."
미정이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커피를 주문해줬어요. 비싼 카페라더니 커피값도 꽤 나가더라고요.
"이모, 제가 요즘 하는 일 좀 설명해드릴게요."
미정이가 서류가방에서 반짝반짝한 브로셔를 꺼내더라고요. 표지부터가 뭔가 고급스러워 보였어요.
"이게 저희 회사에서 새로 나온 프리미엄 상품이에요."
브로셔를 펼쳐보니까 복잡한 그래프와 숫자들이 가득했어요. 솔직히 잘 이해는 안 됐지만,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긴 했어요.
"미정아, 이게 뭐야?"
"이모, 이건 고급 고객용 자산관리 상품이에요. 원금 보장은 기본이고요, 6개월만 투자하시면 30% 수익이 나와요."
30%라고? 은행 금리가 2%도 안 되는데 30%라니...
"미정아, 그게 정말 가능해?"
"이모, 요즘 금융 상품들이 많이 발달했어요. 저희가 해외 투자, 주식, 채권, 부동산까지 전문적으로 포트폴리오 짜서 운용하거든요."
미정이가 자신만만하게 설명하는 걸 보니까, 정말 전문가인 것 같기도 했어요.
"이모, 여기 보세요."
브로셔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보여줬어요. 거기에는 다른 고객들의 수익률이 나와 있었어요.
"이분은 작년에 50% 수익 냈고, 이분은 40%... 다들 만족하고 계세요."
"정말?"
"네, 이모. 저희는 이미 검증된 회사예요. 고객들 재산 관리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거든요."
그러면서 미정이가 또 다른 서류를 꺼내더라고요.
"이모, 그런데 이 상품은 한정된 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거예요. VIP 전용이거든요."
"VIP?"
"네. 일정 금액 이상 투자 가능한 분들만 가능해요. 이모 같은 경우는 충분히 자격이 되시니까."
뭔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위험하지는 않아?"
"이모, 원금 보장이에요.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어요. 최악의 경우에도 원금은 그대로 돌려받으시고요."
"정말?"
"네, 여기 보세요."
미정이가 계약서 같은 걸 보여줬어요.
"여기에 명시되어 있어요. 원금 100% 보장."
그럼 정말 손해는 안 보는 거네요?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게...
"미정아, 이거..."
서류를 자세히 보니까, 어? 제 이름이 이미 적혀 있더라고요.
"미정아, 이거 내 이름이 왜 써져 있어?"
"아, 그거요? 이모 신분증 예전에 복사해뒀거든요. 미리 준비해놨어요."
"언제 내가 신분증을 줬다고?"
"이모, 기억 안 나세요? 몇 년 전에 잠깐 빌려달라고 했을 때요. 이모 집에서 뭔가 서류 필요했을 때..."
전혀 기억이 안 났어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근데 미정이가 그렇게 확신하는 걸 보니까, 제가 까먹은 건가 싶기도 하고...
"미정아, 이거 좀 이상한데... 내 허락도 없이 이름을 써놓고..."
"이모, 걱정 마세요. 그냥 테스트로 이름만 넣어본 거예요. 실제로는 이모가 직접 사인하셔야 진행되거든요."
"그럼 아직 계약이 안 된 거야?"
"네, 맞아요. 이모가 최종 사인하시면 그때 진행되는 거예요."
그럼 다행이네요. 아직 계약이 안 됐으니까.
"미정아, 근데 정말 안전한 거지?"
"이모, 제가 이모한테 거짓말 하겠어요? 저 요즘 이 일로 정말 잘나가거든요."
미정이가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이모, 여기 보세요. 제 사무실이에요."
사진을 보니까 정말 근사한 사무실이더라고요. 큰 책상에 컴퓨터 여러 대, 벽에는 각종 인증서들이 걸려 있고.
"우와, 대단하네."
"이모,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고객들한테 좋은 결과 만들어드리려고."
그러면서 미정이가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줬어요.
"여기는 저희 팀 회식 사진이에요."
사진에는 정장 입은 사람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찍은 것 같은 사진이 있었어요.
"이모, 저희 팀이 작년에 전사 1등 했어요. 그래서 포상휴가도 받고."
정말 성공한 것 같아 보이네요. 어릴 때 그 말괄량이가 이렇게까지...
"미정아, 정말 대단하구나."
"이모, 그러니까 믿고 맡기세요. 제가 이모 돈 잃어버리겠어요?"
그렇긴 하죠. 이렇게 성공한 아이가 저를 속일 이유는 없을 테니까.
"미정아, 근데 진짜로 손해는 안 나는 거지?"
"이모, 몇 번 말씀드려야 해요? 원금 보장이라니까요. 여기 계약서에도 써 있고."
계약서를 다시 보니까 정말 '원금 보장' 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져 있었어요.
"그럼 최악의 경우에도 내가 넣은 돈은 그대로 돌려받는 거야?"
"당연하죠! 이모, 저희가 사기업체인 줄 아세요?"
미정이가 조금 언짢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어요.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라... 워낙 큰 돈이라서 조심스러워서."
"이모, 이해해요. 근데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건 아니에요. 이 상품도 한정된 거라서, 늦으면 못 하실 수도 있어요."
"그럼 언제까지 결정해야 해?"
"이번 주 안에는 해주세요.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고객 받지 않거든요."
시간 제한이 있다니... 뭔가 더 급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미정아, 그럼 내가 생각해볼게."
"네, 이모. 근데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마세요. 진짜 좋은 기회거든요."
카페를 나오면서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정말 좋은 기회일까? 아니면 위험한 일일까?
# 챕터 5: 첫 번째 충격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분명히 반대할 텐데... 그냥 혼자서 결정하는 게 나을까?
저녁 먹으면서 지은이가 물어보더라고요.
"엄마,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응? 그냥 동네 산책하고..."
"그런데 뭔가 표정이 이상하세요."
지은이가 제 표정을 유심히 보더라고요.
"그냥... 엄마 일 때문에 생각이 좀 복잡해서."
"혹시 미정이 관련된 거 아니에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알았지?
"왜 그런 생각을 해?"
"엄마 표정 보면 다 알아요. 미정이 만나고 오신 거죠?"
어쩔 수 없이 털어놨어요.
"미정이 만나고 왔어."
지은이가 바로 반응하더라고요.
"엄마, 뭐라고 했어요?"
"원금 보장에 6개월에 30% 수익이 난다고 하더라."
"엄마!"
성호도 밥 먹던 걸 멈추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게 말이 돼요? 은행에서도 2%밖에 안 주는데 30%라니!"
"그래도 원금 보장이라고 하던데..."
"엄마, 그런 말 다 사기예요! 원금 보장 맞으면 은행에서 했을 거 아니에요!"
지은이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엄마, 정말 위험해요. 요즘 뉴스 보시면 그런 사기 정말 많다고 해요."
"그래도 미정이는..."
"엄마, 미정이가 뭔데요? 20년 동안 연락도 없던 사람이잖아요!"
성호가 흥분해서 말했어요.
아이들이 워낙 반대하니까, 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자꾸만 미정이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원금 보장', '6개월에 30%', '한정된 기회'...
그날 밤에 지은이가 제 방으로 들어왔어요.
"엄마, 정말 걱정돼요."
"뭐가?"
"엄마가 미정이 말에 혹하실까 봐."
"그런 건 아니야..."
"엄마, 미정이가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 말해보세요."
그래서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해줬어요. 브로셔 보여준 것부터, 사무실 사진까지.
지은이가 듣더니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라고요.
"엄마, 그거 완전 이상해요."
"뭐가?"
"엄마 허락도 없이 서류에 이름을 써놨다는 게."
"미정이는 그냥 테스트라고 했는데..."
"엄마, 그게 말이 돼요? 남의 이름 멋대로 쓰는 게?"
그제야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엄마, 신분증 언제 빌려줬다고 했어요?"
"미정이는 몇 년 전이라고 하던데..."
"엄마, 기억나요?"
"음...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엄마, 그런 중요한 걸 기억 못 하실 리가 없잖아요."
맞아요. 신분증 같은 중요한 걸 남한테 빌려줬으면 기억날 텐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미정이가 정말 보험회사에서 일하는지부터."
지은이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아보더니, 얼굴이 더 굳어졌어요.
"엄마, 이거 보세요."
핸드폰 화면에는 뉴스 기사가 떠 있었어요.
'친척 사칭 보험 사기 급증... 고령층 노린 신종 수법'
기사를 읽어보니까 정말 무서운 내용들이 많았어요. 친척이라고 하면서 접근해서 신뢰를 얻은 다음에,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돈을 가져가는 사기 수법이라고...
"엄마, 요즘 이런 사기가 정말 많대요. 특히 상속금 받았다는 소식 들으면..."
그때 제 핸드폰이 울렸어요. 미정이었어요.
"여보세요, 미정아."
"이모, 어떻게 생각해보셨어요?"
지은이가 제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어요.
"미정아, 아직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이모, 시간이 얼마 없어요. 내일 모레까지는 결정해주세요."
"왜 이렇게 급해?"
"이모, 이런 좋은 상품이 언제까지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고 싶어해서..."
"그래도 좀 더..."
"이모, 혹시 누가 뭐라고 했어요? 요즘 사기 많다고 겁주는 사람들 있거든요."
어떻게 알았지?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이모, 저는 진짜 정식으로 하는 거예요. 의심하시면 저희 회사에 직접 오셔도 되고요."
"회사에?"
"네, 내일 시간 되시면 오세요. 직접 보시면 믿으실 거예요."
전화를 끊고 나서 지은이가 말하더라고요.
"엄마,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왜 이렇게 재촉해요?"
맞아요. 뭔가 이상했어요. 왜 이렇게 급하게 하려고 할까?
"그리고 엄마, 누가 뭐라고 했냐고 물어봤죠? 그거 완전 이상해요."
"그럼 미정이가 이미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런 식으로 했다는 얘기야?"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날 밤, 정말 잠을 못 이뤘어요. 미정이 말도 계속 생각나고, 아이들 걱정도 되고...
엄마가 남겨주신 돈인데,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안전하게 은행에 넣어두는 게 나은 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지은이 말이 계속 맴돌았어요. '엄마 허락도 없이 서류에 이름을 써놨다는 게...'
정말 이상하긴 해요. 아무리 친척이라도 그런 건 미리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날 아침, 성호가 출근하기 전에 저한테 말했어요.
"엄마, 제발 미정이 말 듣지 마세요. 진짜 위험해요."
"그래도 한 번 회사는 가봐야겠어."
"엄마!"
"야, 가서 보기만 하는 거야. 계약하겠다는 게 아니라."
"엄마, 그렇게 시작해서 당하는 거예요!"
지은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어요.
"엄마, 정말 조심하세요. 절대 서류에 사인하지 마시고요. 갈꺼면 저랑 같이가요!"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정말 궁금했어요. 미정이가 일하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 정말 전문적인 곳인지...
오후에 미정이한테 전화했어요.
"미정아, 나야."
"이모! 회사 보러 오실 거예요?"
"응, 한 번 가볼게."
"좋아요! 주소 보내드릴게요. 3시에 오세요."
주소를 받아보니까 강남역 근처 오피스 빌딩이더라고요. 꽤 좋은 위치네요.
빌딩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어요. 12층이라고 했는데, 정말 높네요.
12층에서 내려서 호수를 찾았어요. 1205호. 그런데...
문을 보니까 회사 이름이 써진 간판이 없더라고요. 그냥 호수만 써져 있고.
좀 이상하네? 회사면 간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벨을 눌렀더니 미정이가 나왔어요.
"이모! 오셨네요. 지은이도 같이 왔구나!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가니까... 어?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어요.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그냥 작은 방 같았어요. 책상 두 개, 컴퓨터 한 대, 그리고 간단한 소파.
미정이가 보여줬던 사진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었어요.
"미정아, 여기가 너네 회사야?"
"네, 이모. 저희는 아직 작은 회사라서요."
그런데 벽에 걸린 인증서들을 보니까... 뭔가 이상했어요. 글씨가 흐릿하고, 발급 기관도 제대로 안 보이고.
"이모, 앉으세요. 차 한 잔 드릴게요."
미정이가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줬어요. 인스턴트 커피더라고요.
"미정아, 그런데 여기서 몇 명이 일해?"
"저희 팀은 5명이에요. 다들 외근 나가서 지금 없어요."
"아..."
뭔가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어제 보여줬던 사진과는 너무 다르고...
"이모, 그럼 계약서 한 번 보실래요?"
미정이가 서류를 꺼내면서 말했어요.
"여기 사인만 해주시면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서류를 보니까 어제 카페에서 본 것과 같은 거였어요. 제 이름이 이미 써져 있는...
"미정아, 그런데 정말 안전한 거지?"
"이모, 몇 번 말씀드려야 해요? 원금 보장이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게, 계약서를 자세히 보니까 '원금 보장' 이라는 부분이 작은 글씨로 써져 있고, 그 밑에 뭔가 조건들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어요.
"미정아, 이거 무슨 뜻이야?"
"아, 그건 형식적인 거예요. 법적으로 써야 하는 문구들이거든요."
"그래도 읽어보고 싶은데..."
"이모, 너무 복잡해요. 그냥 저를 믿으세요.“
지은이가 눈살을 찌푸렸다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어요
뭔가 이상했어요. 왜 자세히 보지 말라고 하지?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낯선 남자가 들어왔어요.
"미정아, 오늘 계약 몇 건 들어왔어?"
그 남자는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 고객 분들이 계셨네요. 죄송합니다."
미정이가 당황하면서 말했어요.
"이모, 저희 팀장님이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 남자가 저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어요.
"어르신, 좋은 선택 하신 거예요. 저희 상품 정말 좋거든요."
그런데 그 남자 표정이 뭔가 이상했어요. 진짜 웃는 것 같지 않고, 억지로 웃는 것 같았어요.
"미정아, 나 좀 더 생각해볼게."
"이모, 시간이 없어요. 오늘까지인데..."
"그래도..."
그때 그 남자가 끼어들었어요.
"어르신, 이런 기회 놓치시면 안 돼요. 다음에는 못 해드려요."
왜 이렇게 재촉하지? 점점 이상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미정아, 나 오늘은 그냥 갈게."
"이모!"
급하게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집에 와서 지은이와 대화를 나누려는대 지은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어요.
"엄마, 완전 사기 맞는 것 같아요."
"정말?"
"네, 정상적인 회사면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요. 그리고 사무실도 이상하고."
그럼 정말 미정이가 저를 속이려고 했던 걸까?
어릴 때 그 순진했던 미정이가...
# 챕터 6: 녹음파일의 충격적인 내용
지은이가 꺼낸 것은 미정의 휴대폰이었어요. 사무실에서 여럿이 대화하는 사이 몰래 다른 휴대폰과 바꿔치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
"엄마, 잠깐 앉아서 이거 들어보세요."
지은이가 미정 핸드폰을 테이블에 놓고 재생 버튼을 눌렀어요. 처음엔 잡음만 들렸는데,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미정이 목소리였어요.
"걱정하지 마. 이번 건 이모 집까지 담보 걸면 돼."
뭐라고? 제 집을 담보로? 순간 귀를 의심했어요.
다른 남자 목소리도 들렸어요. 미정이 회사에서 봤던 그 남자 같았어요.
"맞아. 그 돈으로 우리가 주식 좀 굴리고, 이모한테는 이자 조금만 떼어주면 되잖아."
"이모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서류만 한 번 더 받으면 돼. 도장도 위조하면 되고."
손이 덜덜 떨렸어요. 이게 뭔 소리예요? 도장 위조라니...
"지은아, 이게 뭐야?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이모 집이 얼마나 나가? 5억은 되지?"
"강남이니까 그 정도는 될 거야. 담보로 걸면 3억까지는 나올 거야."
"좋아. 그럼 그 돈으로 주식 좀 돌리고, 이모한테는 적당히 30% 준다고 하자."
"근데 이모가 의심하면 어떡하지?"
"괜찮아. 원금 보장이라고 계속 얘기하면 돼. 어차피 어른들은 그런 말만 들으면 안심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이게 정말 우리 집 얘기인가요? 그리고 '어른들은 그런 말만 들으면 안심한다'니... 완전히 저를 바보로 본 거잖아요.
"지은아, 이... 이게 진짜야?"
"엄마, 진짜예요. 미정이가 엄마를 완전히 속이려고 했던 거예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대화.
"그런데 이모가 애들한테 얘기하면 어떡하지? 애들이 반대할 텐데."
"그래서 빨리빨리 해야 하는 거야. 애들이 개입하기 전에."
"이모가 워낙 착하니까 금방 넘어올 거야.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잖아 확실하다니까."
"그럼 이번 주 안에 마무리하자. 더 늦으면 위험해."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어요.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지만, 끝까지 들어야 했어요.
그때 성호도 들어왔어요.
"엄마, 무슨 일이에요? 왜 이렇게 안색이... 어?"
지은이가 성호한테도 녹음파일을 처음부터 들려줬어요. 성호가 듣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주먹을 탁자에 내려쳤어요.
"이 미친... 엄마! 이거 완전 사기잖아요!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성호야, 목소리 좀..."
"아니에요, 엄마! 이건 가족이고 뭐고 없어요! 완전히 속이려고 했던 거잖아요!"
녹음파일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어요.
"이모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대?"
"한 2억 정도? 보험금까지 합치면 더 될 거야."
"오, 대박이네. 그럼 우리가 반반 나눠가져도 1억씩이네."
"응, 이모는 원금만 돌려주면 되니까."
저도 화가 났지만, 또 한편으로는 실망감이 더 컸어요. 그 어린 미정이가... 어릴 때 우리 집에서 밥 얻어먹던 그 아이가... 이렇게 저를 속이려고 했다니.
"엄마, 괜찮으세요?"
지은이가 제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아니야... 괜찮지 않아. 정말 실망스러워."
"엄마, 이제 미정이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죠?"
성호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어요.
"그런데 지은아, 너는 어떻게 이걸 가져올 생각을 했어?"
"며칠 전부터 뭔가 이상했거든. 미정이가 너무 재촉하고, 엄마도 흔들리는 것 같고."
"그래서?"
"그래서 미정이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휴대폰을 바꿔치기했지. 혹시 몰라서. 다행히 자동 통화녹음 기능이 있어서 그동안의 모든 통화가 녹취되어있더라구"
다행히 지은이가 그렇게 준비해둔 덕분에 진실을 알 수 있었어요.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엄마, 정말 위험할 뻔했어요."
맞아요. 만약 계속 속았다면, 정말로 집까지 담보로 걸 뻔했어요.
녹음파일 마지막 부분이 들렸어요.
"이모가 이번에 안 넘어오면 어떡하지?"
"괜찮아. 다른 방법이 있어. 이모 신분증 복사본 있잖아."
"아, 맞다. 그걸로 대출 신청하면 되겠네."
"응, 이모 모르게 진행하고, 나중에 기정사실화하면 돼."
완전히 범죄 계획이었어요. 제 동의도 없이 대출을 받으려고 했다니...
"엄마,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성호가 진지하게 물어봤어요.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엄마,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해요. 이미 범죄 의도가 명확하잖아요."
지은이 말이 맞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정이를 완전히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어릴 때 그 아이가...
"엄마, 지금 뭐 생각하고 계세요?"
"그냥... 어릴 때 그 아이가 이런 아이는 아니었는데..."
"엄마, 사람은 변해요. 20년이면 충분히 변할 수 있어요."
지은이가 제 손을 잡으면서 말했어요.
"그리고 엄마, 이건 단순히 돈을 빌리려고 한 게 아니에요. 완전히 사기를 치려고 했던 거예요."
맞아요. 녹음파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저를 속이려는 계획이었어요.
# 챕터 7: 주민센터 상담실에서 만난 희망
그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계속 미정이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우리 집 마당에서 뛰어놀던 모습, 제가 해준 밥을 맛있게 먹던 모습...
그런데 그 아이가 이제는 저를 완전히 속이려고 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아침, 지은이가 말했어요.
"엄마, 주민센터에 상담받으러 가요."
"상담?"
"네, 이런 사기 사건 전문으로 상담해주는 분이 계신대요.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그런 게 있어?"
"네, 요즘 이런 일이 많아서 전문 상담사가 있대요."
솔직히 주민센터에 가는 것도 좀 창피했어요.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 사기를 당할 뻔했다니...
하지만 지은이가 워낙 걱정해서, 결국 함께 주민센터에 갔어요.
주민센터 2층에 '생활법률상담실'이라는 곳이 있더라고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 계셨어요.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 사기를 당할 뻔했어서요."
"아, 그러세요? 앉으세요. 저는 이민수 상담사입니다. 편하게 이반장이라고 불러주세요."
이반장님이 정말 친절하게 맞아주셨어요.
"어르신, 힘드셨겠어요.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얘기해드렸어요. 장례식장에서 만난 것부터, 카페에서 있었던 일, 회사에 갔던 것, 그리고 녹음파일까지.
이반장님이 녹음파일을 들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어르신, 이거 전형적인 친족 사기예요. 요즘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요."
"진짜요?"
"네. 특히 장례식 직후에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노리는 거죠."
"그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많이 당하는 거예요?"
"네, 안타깝게도 정말 많습니다. 작년에만 우리 구에서 50건 넘게 접수됐어요."
50건이나... 저만 당하는 일이 아니었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증거 수집이 중요해요. 녹음파일은 훌륭한 증거고요, 서류도 있고, 문자나 통화 기록도 다 증거가 됩니다."
지은이가 가져온 서류들을 보시더니 이반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이거 보세요. 여기 계약서에 어르신 도장이 없죠?"
"네."
"이건 명백한 위조예요. 그리고 여기 보시면, 계약 내용도 완전히 말이 안 돼요."
이반장님이 계약서를 자세히 분석해주셨어요.
"수익률 30%라는 것도 비현실적이고, 원금 보장 조건도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들로 되어 있어요."
"그럼 처음부터 속일 작정이었다는 얘기네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분들이 어르신 집까지 노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반장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정말 화가 났어요. 그동안 제가 얼마나 바보같이 당할 뻔했는지...
"이반장님,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더 이상 연락하지 마시고, 혹시 또 연락 오면 모든 내용을 다 녹음하세요."
"네."
"그리고 은행에서 어르신 명의로 만들어진 계좌나 대출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대출요?"
"네, 녹음파일 들어보니까 이미 어르신 신분증으로 뭔가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깜짝 놀랐어요.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피해를 봤을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리고 필요하면 경찰에도 신고할 수 있어요. 이미 사기 의도가 명확하거든요."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돼요?"
"수사가 들어가고, 미정 씨와 공범들을 잡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도 구할 수 있고요."
"다른 피해자들?"
"네, 이런 사기꾼들은 보통 여러 명을 동시에 속여요. 어르신만 노린 게 아닐 거예요."
그렇다면 다른 분들도 저처럼 속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이반장님, 그럼 신고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신고하시는 걸 권합니다. 어르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요."
지은이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 신고해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더 많은 증거를 모아보세요. 그리고 은행부터 가서 확인해보시고요."
이반장님이 메모지에 뭔가를 적어주셨어요.
"여기 제 연락처예요. 언제든지 도움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주민센터를 나오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요. 혼자가 아니구나, 도와줄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챕터 8: 차명통장의 발견
다음날, 지은이와 함께 은행에 갔어요. 제 명의로 만들어진 계좌나 대출이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은행 창구에서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금융거래신용정보를 조회해주더라고요.
"어르신, 여기 보세요."
직원이 컴퓨터 화면을 보여줬어요.
"어르신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하나 더 있네요."
"뭐라고요?"
"세계은행에 어르신 명의 계좌가 있어요. 언제 만드셨어요?"
"저는 그런 계좌 만든 적 없는데요?"
직원이 자세히 확인해보더니 말했어요.
"개설일이 지난주네요. 어르신,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전혀요."
지은이가 제 옆에서 말했어요.
"혹시 누군가 엄마 신분증을 도용한 것 같은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계은행에 직접 가보세요. 계좌 개설할 때 CCTV도 있고, 서류도 있을 거예요."
바로 계은행으로 갔어요. 지점장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계좌 개설 당시 기록을 찾아주더라고요.
"어르신, CCTV 확인해보시겠어요?"
CCTV 화면을 봤는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아닌 다른 여자가 제 신분증을 들고 계좌를 개설하고 있었거든요.
"저 여자가 누구예요?"
화면 속 여자는... 미정이었어요.
"저 사람이 우리 조카예요."
"어르신 조카분이 어르신 신분증으로 계좌를 개설했다는 얘기네요."
"네..."
지점장이 거래 내역을 뽑아주었어요.
"어르신, 이 계좌로 돈이 여러 번 들어왔다가 바로 다른 계좌로 나갔네요."
"얼마나요?"
"총 5천만 원 정도 거쳐갔네요."
5천만 원이라니... 제 돈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 돈일 거예요.
"그리고 여기 보세요. 돈이 나간 계좌 이름이 '박성우'네요."
박성우... 녹음파일에서 들었던 그 이름이에요.
"지점장님, 이거 명백한 신분증 도용 아닌가요?"
지은이가 물어봤어요.
"네, 맞습니다. 이건 금융사기에 해당해요. 경찰에 신고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집으로 돌아와서 이반장님께 전화드렸어요.
"이반장님, 저예요. 은행에서 확인해봤는데..."
상황을 설명해드리니까 이반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어르신, 이거 완전한 사기네요. 당장 경찰에 신고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지은이가 또 중요한 걸 발견했어요.
"엄마, 이거 보세요."
지은이가 인터넷에서 뽑은 자료를 보여줬어요.
"이게 뭐야?"
"엄마, 제가 미정이에 대해서 더 조사해봤어요."
"뭘 조사했어?"
"미정이 SNS 계정을 찾았어요."
핸드폰 화면에는 미정이 인스타그램이 떠 있었어요.
"여기 보세요. 미정이가 다른 사람들과 찍은 사진들이에요."
사진을 보니까, 미정이가 여러 명의 노인분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있었어요.
"이분들 누구야?"
"아마 다른 피해자들일 거예요. 댓글 보세요."
댓글을 보니까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미정아 고마워, 덕분에 용돈 생겼어."
"이모 덕분에 투자 잘했어요."
"다음에 또 좋은 상품 있으면 연락줘."
"지은아, 이 사람들도 다 속은 거야?"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 더 무서운 게..."
지은이가 다른 사진을 보여줬어요.
"여기 보세요. 미정이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그 박성우라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진이에요."
사진 속에는 미정이와 낯선 남자가 샴페인을 들고 웃고 있었어요.
"댓글도 보세요."
"오늘도 대박! 이번 달 목표 달성!"
"돈 벌기 너무 쉬워 ㅋㅋㅋ"
완전히 저희들을 우롱하고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엄마, 이제 확실해졌죠? 미정이는 전문 사기꾼이에요."
"그런가 봐..."
정말 분했어요. 어릴 때 그 순진했던 미정이가 이렇게 변했다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른 피해자들이 걱정되기도 했어요. 저는 다행히 속지 않았지만, 저 사진 속 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지은아, 이걸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거지?"
"네, 엄마. 이제 충분한 증거가 모였어요."
성호도 퇴근하고 와서 자료들을 보더니 말했어요.
"엄마, 이거 완전 조직적이네요. 미정이 혼자 한 게 아니야."
"그럼 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야?"
"네, 아마 사기 조직일 거예요."
그럼 더더욱 신고해야겠네요. 이런 사람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 챕터 9: 공개 대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미정이한테 전화했어요.
"미정아, 나야."
"어머, 이모! 어떻게 지내세요? 그동안 연락이 없으셔서..."
"미정아, 우리 만나자."
"좋아요! 언제요?"
"내일 오후에. 근데 이번엔 다른 사람들도 함께 만나자."
"다른 사람들이요?"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 같았어요.
"응. 주민센터 상담사분이랑, 우리 아이들도."
"어... 이모, 왜 갑자기 그렇게 하세요?"
"미정아,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전화기 너머로 미정이가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이모, 무슨 말씀이세요?"
"내일 보면 알아. 주민센터 상담실로 와. 2시에."
"이모..."
"미정아, 안 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전화를 끊었어요. 손이 덜덜 떨렸지만, 이제 끝까지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다음날, 주민센터 상담실에 이반장님, 지은이, 성호, 그리고 저까지 모였어요. 미정이가 올지 안 올지 걱정했는데, 2시 조금 넘어서 나타났어요.
미정이가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많으니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모, 이게 뭐예요?"
"미정아, 앉아."
이반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미정 씨, 앉으세요. 얘기할 게 있어요."
"제가 왜요? 저는 이모만 만나러 왔는데..."
지은이가 핸드폰을 꺼내서 녹음파일을 틀었어요.
"이거부터 들어보세요."
미정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번 건 이모 집까지 담보 걸면 돼..."
"그 돈으로 우리가 주식 좀 굴리고..."
"이모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미정이 얼굴이 점점 하얘지더라고요.
"이... 이게 뭐예요?"
"미정 씨 목소리 맞죠?"
이반장님이 차분하게 물어보셨어요.
"저... 저는..."
"미정 씨, 이건 명백한 사기 행위예요."
성호가 은행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테이블에 펼쳤어요.
"여기 보세요. 우리 엄마 명의로 만든 계좌 거래 내역입니다."
"저는... 저는 그런 거 안 했어요."
"그럼 이 CCTV는 뭐예요?"
지은이가 태블릿으로 은행 CCTV 화면을 보여줬어요. 미정이가 제 신분증으로 계좌를 만드는 장면이었어요.
"이것도 미정 씨 맞죠?"
미정이가 더 이상 말을 못 하더라고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어요.
"미정아, 왜 이랬어?"
제가 물어봤어요.
"이모..."
"어릴 때 우리 집에서 밥 얻어먹던 그 아이가 맞아? 이렇게 이모를 속이려고 했던 거야?"
"이모, 저는... 저는..."
"미정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속였지?"
지은이가 인스타그램 사진들을 보여줬어요.
"이분들도 다 속인 거예요?"
미정이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어요.
"죄송해요..."
"미정 씨, 지금까지 몇 명이나 속였습니까?"
이반장님이 물어보셨어요.
"저는... 저는 처음에는 정말 좋은 투자 상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녹음파일 다 들었잖아요."
성호가 화를 내며 말했어요.
"오빠는... 성우 오빠는 괜찮다고 했어요. 돈을 좀 빌려서 투자하면 다 갚을 수 있다고..."
"성우? 박성우?"
"네..."
"그 사람이 누구예요?"
"저... 저 남친이에요. 투자 전문가라고 해서..."
아, 그렇구나. 미정이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인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죠.
"미정 씨,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혔는지 아세요?"
이반장님이 엄중하게 말씀하셨어요.
"저... 저도 속은 거예요. 성우 오빠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을 속인 건 사실이잖아요."
지은이가 말했어요.
"미정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제가 물어봤어요.
"이모... 정말 죄송해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미정 씨, 일단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해금액을 돌려드려야 해요."
"하지만... 돈이 없어요. 다 성우 오빠가 가져갔어요."
"그럼 그 박성우 씨는 어디 있어요?"
"모르겠어요. 며칠 전부터 연락이 안 돼요."
결국 미정이도 버림받은 거네요.
"미정 씨, 그래도 책임은 져야 해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이반장님 말씀에 미정이가 울기 시작했어요.
"이모... 저 정말 죄송해요. 처음에는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미정아, 사과로 되는 일이 아니야. 다른 분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겠어."
"이모..."
"미정아, 이제라도 제대로 해. 경찰 수사에 협조하고, 박성우 찾는 걸 도와줘."
"네... 알겠어요."
# 챕터 10: 사이다 결말과 새로운 시작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윤영자 씨, 저희가 박성우를 검거했습니다."
"정말요?"
"네, 미정 씨가 협조해서 찾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피해자들도 여러 명 더 찾았고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박성우가 잡혔으니 이제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윤영자 씨는 실제 피해를 보지 않으셔서, 처벌은 미정 씨가 더 가볍게 받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일주일 뒤, 미정이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이모께,
정말 죄송합니다.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어릴 때 이모가 저에게 해주신 모든 좋은 일들을 생각하면, 제가 얼마나 나쁜 일을 했는지 더욱 깨닫게 됩니다.
성우를 만나고 나서 돈에 눈이 멀어서 정신을 못 차렸어요. 하지만 그것도 변명일 뿐입니다.
지금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고, 다른 피해자 분들께 사과드리고 있습니다. 돈도 최대한 돌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모께는 정말 용서를 구할 자격도 없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모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미정 올림'
편지를 읽으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화도 나고, 실망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엄마,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은이가 물어봤어요.
"글쎄... 미정이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일 수도 있고."
"그래도 엄마를 속이려고 했던 건 사실이잖아요."
"맞아. 하지만 그래도 정신 차린 것 같아서..."
성호가 말했어요.
"엄마, 너무 착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미정이가 한 일은 분명히 나쁜 일이에요."
"알아. 하지만 그래도..."
몇 달 뒤, 재판이 열렸어요. 박성우는 징역 3년, 미정이는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어요.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데, 미정이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모..."
"미정아."
"이모, 정말 죄송해요."
"이제 됐어. 앞으로 잘 살아."
"네... 이모도 건강하세요."
그렇게 미정이와는 작별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은이가 말했어요.
"엄마, 이번 일로 많이 배우신 것 같아요."
"그래, 정말 많이 배웠어."
"뭘 배우셨어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
성호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엄마, 이번에 저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맞아. 너희들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집에 와서 엄마 사진 앞에 앉았어요.
"엄마, 엄마가 남겨주신 돈 잘 지켰어요. 거의 잃어버릴 뻔했는데, 다행히 지켰어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며칠 뒤, 이반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어르신, 어떻게 지내세요?"
"덕분에 잘 지내요. 이반장님 도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다행이에요. 그런데 어르신,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뭔데요?"
"다른 어르신들께 이런 사기 예방 교육을 해주실 수 있으세요? 어르신 경험을 들려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제가요?"
"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해주시면 더 와 닿을 거예요."
생각해보니 좋은 일인 것 같았어요. 저같은 일을 다른 분들이 당하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거니까.
"좋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어르신 대상 교육이 있는데, 참여해주실 수 있으세요?"
"네, 참여할게요."
일주일 뒤, 주민센터 강당에서 사기 예방 교육이 열렸어요. 60대, 70대 어르신들이 30여 명 모이셨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저는 윤영자라고 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제 경험을 들려드렸어요. 처음에는 떨렸는데, 말하다 보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도 미정이를 완전히 믿었어요. 어릴 때부터 알던 조카니까요. 하지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셨어요.
"특히 '원금 보장'이라는 말에 혹했어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높은 수익률과 원금 보장을 동시에 약속하는 투자는 99% 사기라고 보셔야 해요."
"그럼 어떻게 구별하나요?"
한 어르신이 질문하셨어요.
"첫째, 너무 급하게 재촉하면 의심하세요. 정당한 투자라면 충분한 시간을 줍니다."
"둘째, 가족들과 상의하라고 하면 피하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당한 투자라면 가족들과 상의하는 걸 반대할 이유가 없죠."
"셋째, 계약서를 자세히 보지 못하게 하거나, 복잡하다며 넘어가려고 하면 의심하세요."
어르신들이 메모까지 하면서 들어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돈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하세요. 저도 조카라서 믿었다가 큰일 날 뻔했거든요."
교육이 끝나고 나서 여러 어르신들이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덕분에 좋은 공부 했어요."
"우리도 조심해야겠네요."
"혹시 이상한 투자 얘기 들으면 바로 신고할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았어요. 제 경험이 다른 분들한테 도움이 된다니.
그날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했어요.
"오늘 교육 어떠셨어요?"
지은이가 물어봤어요.
"정말 좋았어. 다른 분들이 고맙다고 하시더라."
"엄마, 정말 대단하세요. 나쁜 경험을 좋은 일로 바꾸시다니."
성호가 말했어요.
"그러게. 이제 생각해보니 이번 일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아."
"왜요?"
"미정이 일 때문에 우리 가족이 더 끈끈해진 것 같고,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됐으니까."
"맞아요, 엄마.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똑똑한지도 알게 됐어요."
지은이가 웃으면서 말했어요.
"똑똑하긴. 거의 속을 뻔했는데."
"하지만 끝까지 서류에 사인 안 하셨잖아요. 그리고 저희 말도 들어주시고."
"그건 너희 덕분이야."
그날 밤, 엄마 사진 앞에 다시 앉았어요.
"엄마, 이제 정말 마음이 편해요. 엄마가 남겨주신 돈도 안전하게 지켰고,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됐어요."
사진 속 엄마가 웃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엄마, 이번 일로 많이 배웠어요.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도요."
며칠 뒤, 이반장님한테서 또 연락이 왔어요.
"어르신, 교육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다음에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르신, 좋은 소식이 있어요."
"뭔데요?"
"박성우가 숨겨둔 돈을 더 찾았어요. 피해자들한테 더 많이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네, 어르신 덕분에 많은 분들이 도움 받으셨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겪은 일이 다른 분들한테 도움이 됐다니.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어요. 저는 월 2회씩 주민센터에서 사기 예방 교육을 하고 있어요. 매번 새로운 어르신들이 오셔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어르신들, 기억하세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특히 돈에 관해서는 더욱 조심하셔야 해요."
"그리고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돈 문제만큼은 가족들과 꼭 상의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의심스러우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나 경찰에 신고하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해주실 때마다 뿌듯했어요.
어느 날, 교육이 끝나고 나서 한 할머니가 저한테 오셨어요.
"선생님, 감사해요. 저도 비슷한 일 당할 뻔했는데, 오늘 이야기 듣고 정신 차렸어요."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조심하세요."
"네, 그런데 선생님, 그 조카분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은 잘 지내는 것 같아요. 가끔 안부 편지가 와요."
실제로 미정이한테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편지가 와요. 지금은 작은 회사에 다니면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마지막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이모, 저 이제 정말 정직하게 살고 있어요. 이모 덕분에 정신 차릴 수 있었어요. 평생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그래도 미정이가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선 것 같아서.
오늘도 집에 와서 엄마 사진 앞에 앉았어요.
"엄마, 저 이제 정말 당당해요. 엄마가 남겨주신 돈도 잘 관리하고 있고,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지은이와 성호가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웃고 있는 소리가 들렸어요.
"엄마, 행복해요. 정말 행복해요."
사진 속 엄마가 환하게 웃고 계시는 것 같았어요.
이제 저는 확신해요. 사람을 믿되, 맹목적으로 믿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만큼 소중한 게 없다는 것.
엄마가 남겨주신 건 돈이 아니라, 가족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지혜였어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할 거예요. 사기 예방 교육도 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제 경험을 나눠드리는 일도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거예요.
엄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에필로그
1년 뒤, 저는 구청에서 '모범 시민상'을 받았어요. 사기 예방에 기여한 공로라고 하더라고요.
시상식에서 지은이와 성호가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엄마, 정말 자랑스러워요."
"엄마가 이렇게 멋진 일을 하실 줄 몰랐어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이번 일이 정말 축복이었다고 생각했어요.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지금도 저는 매주 주민센터에 나가서 어르신들을 만나요.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울기도 해요.
"어르신들, 늦은 나이에 속았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중요한 건 깨달았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분들이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내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엄마, 저 이제 정말 당당하게 살고 있어요. 엄마가 남겨주신 유산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유산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바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마음,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고맙습니다, 엄마. 정말 고맙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디오북으로 정성스레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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