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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Feb 05. 2024

아내의 하루

아빠의 시선으로 돌아보는 엄마의 하루

이른 새벽, 부스럭 옷가지를 챙기는 소리와 끼잉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아이들이 혹시라도 깰까 봐 까치발로 다니며 몸가짐을 조심한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둘째는 매일 끄응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 익숙한 엄마 냄새를 찾는다.




둘째를 겨우 다시 재우느라 계획보다 늦게 출발했다. 아직 어두운 골목길에서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 소음 속에 겨우 몸을 맡길 때쯤 핸드폰이 울린다.


오늘도 둘째는 울음을 터트린 얼굴이다. 언제쯤 둘째가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날까 착잡한 마음을 달래 본다. 얼마 되지 않는 지하철에서의 자유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낼 수 없다.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판교역. 출구로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직장인들이 몰려 내려온다. 붐비는 역을 빠져나와 공원을 가로질러 회사로 향한다. 15분 정도 되는 짧은 이 시간이 여유롭다. 아이들은 잘 준비하고 있을까 종종 신경 쓰이지만, 아빠가 잘 챙길 거라고 믿는다.




사무실 불을 켜고 자리에 앉는다. 아직 여덟 시가 지나지 않은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육아 부담을 나누기 위해 복직하자마자 회사의 육아 지원 제도를 신청했다. 남들보다 두 시간 먼저 퇴근해야 하기에 매일 최소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려고 애쓴다.


거의 5년 만에 회사에 돌아왔다. 긴 시간 동안 회사의 면면은 변한 게 거의 없다. 사무실의 쌀쌀한 공기와 딱딱한 분위기도 아직 그대로다. 오히려 엄마가 아닌 직장인인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어수선한 복직 첫 달이 금세 지나가고 다른 부서로 발령을 받아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원했던 업무는 아니었지만 이런 경험이 자신을 더 성장시켜 줄 것이라고 여긴다.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회사 생활에 관해 특별히 염려되는 것도 없다. 둘째가 엄마 없는 아침을 아직 힘들어하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남편도 아이들을 잘 챙기면서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 문득 가족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조금씩 성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선을 조금 먼 곳으로 돌려보면 걱정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남편도 곧 출근하게 될 텐데 그때는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해에는 다시 휴직을 해야 할지,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일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어린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지금도 시부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맞벌이 부부가 주변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도움마저 받을 수 없을 땐 대게 엄마가 혼자 육아와 집안일을 맡게 된다. 이는 매우 고된 일이기도 하지만, 커리어가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


오후 네 시가 되었다. 하던 일을 얼른 마무리하고 회의 중인 팀장님께 조용히 인사를 드린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끝내지 못한 업무와 저녁 메뉴 고민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집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다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때만큼은 세상 모든 고민이 다 사라진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책상 옆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게 멈춘 듯 고요한 이 밤. 남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다. 언제까지나 우리 가족에게 이런 안온한 날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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