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제 Feb 26. 2024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

새 어린이집 입소 설명회에 다녀오며

삶은 무엇이 최선인지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육아도 그렇다. 부모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임신, 태교, 육아 준비, 출산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양육과 교육에 관한 선택도 끊이지 않는다. 방법과 노하우에 대한 정보는 넘쳐서 아는 것은 이제 아무 힘이 되지 않는다. 선택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할 경제력과 물리적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건, 최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신학기를 앞둔 2월,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변화를 준비한다. 우리 가족 또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지금 어린이집은 5세 반을 운영하지 않아서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낼지 말지에 대한 고민은 작년 가을부터 계속되었다. 아이 교육 면에서 유치원이 더 나을 듯했지만, 추가되는 비용만큼 가치가 있을지는 아내도 나도 확신이 없었다. 오히려 가까운 어린이집에 둘째와 함께 다니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유치원은 학교 입학 전 1년만 다녀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여러 장단점의 무게를 재보다가, 두 아이를 함께 새로운 어린이집에 보내는 길을 택하였다. 둘째가 지금 어린이집에서 힘든 상황을 겪었던 점이 가장 컸다. 어느 쪽의 잘못도 아닐 수 있지만, 둘째를 무조건 다른 괜찮은  곳에 보내고 싶었다. 동네에서 평이 가장 좋은 어린이집은 두 아이를 함께 보내야만 입소가 가능했고, 첫째 교육에 대한 고민은 둘째 적응에 대한 걱정으로 지워졌다. 둘째를 위해서 중요한 선택을 한 건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새 어린이집 입소 설명회에 다녀왔다. 동네에서 가장 인기 좋은 곳답게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현재 다니는 곳과 완전히 다른 차원의 환경이었다. 수십 년 동안 운영된 곳인데 작년에 새로운 건물로 이전해서 시설이 매우 깔끔했고 공간도 충분히 넓었다. 벌써 둘째가 이곳에서 잘 자라는 모습이 그려졌다.


설명회는 어느 교실 안에서 진행되었다. 스무 명에 가까운 학부모가 자기 무릎 높이도 오지 않는 어린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았다. 무려 20년 넘게 이곳을 운영한 원장님은 한 시간 가까이 열정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선생님들도 설명회 내내 전문적인 모습을 보였고, 몇 분은 십 수년 째 이곳에서 근무 중이라고 하였다. 우리 아이들, 특히 둘째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원장님의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설명회 후반부, 원장님은 CCTV 열람 관련 원칙과 그동안의 사례를 이야기하였다. 마지막 말로 마치 원생처럼 열 맞춰 얌전히 앉아 있는 학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어머님 아버님의 아이를 양육하는 건 우리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어머님 아버님이 다 함께 돕는 일입니다. 선생님과 학부모 간, 그리고 학부모끼리도 서로 양보하고 신뢰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둘째에게 지난 몇 달 동안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작년 가을쯤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뀐 시기에 아이의 깨무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심하게 물고 온 날에는 며칠씩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도 했다. 다행히 그 후 두세 달 동안 돌발 행동이 사라졌지만, 아내가 복직을 한 시기에 다시 친구들을 깨물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정확한 이유를 알 수도 없지만, 자아가 불쑥 강해지는 시기에 불안감도 커진 것 같았다. 마음 아프게도 지난 두 달 동안 대여섯 번이나 여러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의 잘못은 우리의 잘못이므로 일이 생겼을 때 상대방 아이를 살피고 편지나 문자 메시지, 그리고 작은 선물로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등하원 길에 상대방 어머니를 마주치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어머니들은 사과를 잘 받아주었지만, 몇몇은 우리 아이와 부부에 대해 뒤에서 수군거렸고, 은근히 우리를 모른 척했으며, 한 어머니는 사과 전화를 건 아내에게 심한 폭언까지 했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쉽게 나눈다. ‘요즘 아이들은 이래’, ‘요즘 아이들은 저렇대’라며 누군가의 편견을 통해 아이들을 규정짓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과 사회가 만든 걸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우리 부부도 둘째의 행동과 관련하여 잘못한 점도 있을 것이다. 설명회에서 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어머니들이 떠올랐고, 이번 학부모들은 부디 괜찮은 사람들이기만을 바랐다.




설명회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진정 그 어머니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렸던 걸까. 아이의 작은 상처에도 쓰라릴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인데, 아이 팔에 며칠 동안 물린 자국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나름대로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충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둘째 반 어머니들과 우리 부부가 전혀 친분이 없어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은 걸까. 혹시 우리도 모르게 두 살 배기 아이가 한 행동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행동이 몇 번 반복되면서 우리의 사과도 조금은 형식적으로 변했던 게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며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지만,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어느 책 제목처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믿기에 연대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요즘처럼 핵개인화 된 사회에서 공허한 메시지일 테지만, 사람에 대한 믿음만은 잃고 싶지 않다. 막상 내 아이의 행동과 관련하여 내가 충분히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진다. 새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괜찮은 사람이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나부터 괜찮은 학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군인인 내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수차례 집을 옮겨 다녀야 했다. 내가 그렇게 자랐기 때문인지, 아이들 친구의 가족이 갖는 의미, 함께 생활하는 이웃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온 마을 아이들이 함께 큰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아이들의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육아와 관련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고, 어린이집의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한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역시 모르지만, 최소한 우리 아이들에게 타인과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나부터 온 마을의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전 08화 아내의 하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