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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제 Jun 03. 2024

너희가 아빠를 키운 거구나

라테파파 6개월 돌아보기

아내가 복직한 지 반년이 지났다. 첫 두 달쯤 동안, 우리 가족은 달라진 일상과 역할에 각자 나름대로 잘 적응해 냈다. 그다음 두어 달도 아이들이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순식간에 흘러갔다. 아이들은 그동안 놀랄 정도로 훌쩍 자랐고, 엄마 없는 아침과 등하원길에도 익숙해졌다. 첫째 딸은 다 큰 아이처럼 아침에 혼자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꾸민다. 둘째도 이제 아침에 일어나 엄마가 곁에 없어도 울지 않는다.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게 된 날이면 악당 놀이 한 번만 하고 가라며 애교스럽게 장난을 친다.


아이들은 새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다. 첫째는 새로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 좋다며 어린이집에 매일 가고 싶다고 할 정도다. 내심 상당히 걱정스러웠던 둘째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 첫 두어 주 정도의 적응기를 보낸 후, 원에 들어가기 싫다고 울거나 얼굴을 찌푸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지난 어린이집에 다닐 때처럼 반 친구들을 깨물거나 꼬집은 일도 없다. 등하원 할 때의 모습과 선생님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둘째는 항상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 30개월 차가 된 최근에는 발달도 많이 진행되었다. 한 차례 살이 쭉 빠지면서 키가 쑥 컸고, 혼자서도 잘 뛰어다니며 계단도 성큼성큼 오른다. 일상적인 대화도 다 통할 정도로 말도 트였고 감정 표현도 풍부해졌다.




아내가 출근하는 평일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반복되었다. 아침 기상부터 등원까지 세 시간 정도, 하원 후 놀이터나 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아이들을 돌본다. 아내가 집에 온 후에도 아이들이 다 잠들 때까지 세 시간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온전하게 잘 지내도록 챙겨야 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도 참 많다. 아이들이 아픈 데는 없는지 살피고, 아침 식사와 오후 간식을 준비하고, 입을 옷과 가져갈 준비물을 챙기고, 계절과 날씨, 그리고 발달 단계에 맞는 생필품을 주문하고, 어린이집 공지를 확인하고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필수 예방 접종과 정기 검진을 챙긴다. 단순히 아이들을 잘 먹이고 챙기고 놀아주는 것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부족함 없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게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이었다.


아이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제법 능숙해졌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과는 편안하게 아이들의 하루와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키즈노트에 댓글도 종종 남기고 선생님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기도 한다. 같은 반 친구들 보호자들과도 안면을 텄다. 절반이 살짝 넘게 대부분 아이들의 엄마를 만나지만, 다양한 보호자들을 마주치게 된다. 등하원 모두 맡아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꽤 보이고, 등원 또는 하원만 담당하는 아빠, 하원만 담당하는 학원 선생님도 있고, 나처럼 주양육을 맡은 아빠도 몇 명 있다. 엄마들끼리 친해지는 정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다양한 보호자를 만나며 왠지 모를 공감대가 생기고, 매일 가볍게 인사를 나눌 땐 말로 설명하기 안정감도 느낀다.


가족이 내게 가장 중요하다는 점과 아이들을 가장 사랑한다는 점은 언제나 같았다. 회사에 다닐 때도 항상 아내와 아이들을 신경 썼고, 불가피하게 출근해야 하는 경우를 빼면 주말에도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주양육자로 지내며 비로소 깨달은 것은 그때는 보조자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뿐만 아니라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내가 복직하기 전 아이들을 함께 돌보던 때의 그것과도 완전히 달라졌다. 나를 중심에 두고 가족과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총체적인 가족과의 삶으로써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으며, 가족에 대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다. 아이들을 돌보며 아빠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였다.


지난 여섯 달 동안 나 자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은 대체로 편안했다. 불안감을 느낀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금세 사라지곤 했다. 그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집중하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기분이 든 적도 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돌아오던 어느 화창한 날, 이 세상에 나 혼자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의 순환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아주 작은 나만의 독립된 우주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무한히 돌고 있는 듯했다. 나의 미래, 커리어, 사회관계, 집안 재정 같은 현실적인 걱정거리는 작은 먼지처럼 변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양육자로서의 역할만 잘해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아내가 복직한 후 반년, 내가 퇴직한 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월 언젠가,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일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아이들을 위해 다시 경제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아내가 회사에 다니고 나는 개인 활동을 하며 계속 아이들을 돌보는 방법도 선택할 수는 있었다. 두 아이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생활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 삼사 년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풍부한 삶은 아니겠지만 소박한 삶도 괜찮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 회사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내 커리어를 다시 쌓아가고, 다시 사회에서 내 역할을 하며 자존감을 느끼고, 경제 활동을 하며 가정의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었고 어렸을 때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때마침 긍정적인 제안도 있었고 좋은 기회도 있었다. 작년 퇴직하기 전, 이직 논의를 나누었던 두 곳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곳은 서류에서 탈락했고, 한 곳은 오랜만에 긴장한 채 면접에 임했지만, 아쉬운 결과를 받았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불안감에 깊숙이 빠지게 되었다.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 너무 오래 쉰 게 아닐까, 작년에 바로 이직할 걸 그랬나, 과연 사회에서 내 쓸모가 아직 존재하는 걸까. 온갖 질문과 의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자존감이 완전히 떨어지고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아이들을 대할 때도 시무룩한 모습이 되었다.


며칠 뒤 어느 날 아침, 부족한 아빠를 끌어올려준 건 바로 우리 집 막내였다. 그날따라 둘째는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다. 일어나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장난감 놀이를 하더니, 밥도 한가득 다 먹고 길을 나섰다. 등원길 유모차 안에서도 신나는 목소리로 헬로 카봇 노래를 불렀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큰 목소리로 “이따 봐”라고 인사를 하더니, 평소와 다르게 선생님 손도 잡지 않고 혼자 씩씩한 걸음으로 안으로 향했다. 자기 등만큼 큰 가방이 털썩털썩 거추장스러워도 둘째의 양손과 양발은 거침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들에게 들킬까 봐 얼른 고개를 돌려 나와야 했다. 아빠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계속 둘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보살핌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아이가 어느덧 씩씩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삶의 단계마다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다. 눈물이 자꾸 날뻔했지만 대견한 모습에 웃음이 더 나왔다.




지난 주말, 잠시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니 첫째 딸이 깜짝 선물을 주었다. 자기가 아빠를 위해 책을 만들었고 엄마에게 부르는 대로 글을 써달라고 했다며 작은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책의 제목은 ‘오늘 아빠가 처음으로 회사 가는 길’이었다. 아빠는 또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A4용지로 만든 손바닥만 한 책에는 아빠가 다시 회사에 가면 울 것 같다며 엄마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자신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최근에 아내와 취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걸 딸이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나 보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졌고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해졌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아이들도 그렇게 느꼈다는 걸. 아빠의 사랑만 자라난 게 아니었다는 걸. 아이들도 아빠를 엄청 사랑하고 있었고,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서로의 유대감도 상당히 깊어져 있었다. 첫째는 밤마다 아빠가 엄마보다 손톱만큼 더 좋다고 속삭이고, 둘째는 어느새 아빠와도 순하게 잠에 든다.


시간이 지나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일이 있다. 아빠는 퇴직하고, 엄마는 복직한 우리 가족의 이 시간이, 모두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시간의 힘으로 아빠는 우리 아이들처럼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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