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중 하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피할 수 없다.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할 때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인 말을 고르고, 상대가 좋아할 말만 골라낸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야 할 때다.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빌릴 수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덜 비굴해 보일지.
군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선임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성 멘트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건넸다. 윗선임과 최고참의 관계까지 고려하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반복했다. 이상하게도 그 악순환은 내가 선임이 되었을 때도 이어졌다. 후임은 나에게, 내가 했던 말들을 따라 했다.
직장도 다르지 않다. 승진이나 유리한 자리, 그걸 얻기 위해 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만 전한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해야만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런 것도 사회생활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과정은 아니다. 남을 위한 말을 반복하다 보면, 나는 점점 흐릿해진다. 처음엔 배려였다. 관계를 위한 사회적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습관이 되고, 표정이 되고, 결국 내 일부가 되어버린다.
진심보다 상황을 먼저 고려하게 되고, 내 감정보다 타인의 눈치를 먼저 본다. 그렇게 말은 남을 위한 것이 되고,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어느새 나는, 내가 아니다. 왜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할까. 왜 아쉬운 소리를 하며 나를 줄여야 할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결국 둘 중 하나다. 돈이 많든 지, 자기 경쟁력이 강하든지. 주머니가 크든지, 내면이 단단하든지. 가진 게 많으면 말이 줄어든다. 자기 자신을 증명할 수 있다면 굳이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그게 없다면, 우리는 말로 버틴다. 말로 관계를 붙들고, 말로 나를 설명하고, 말로 살아남는다. 냉정하지만, 분명한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를 채운다. 그리고 지금, 마음에도 없는 말, 아쉽고 비굴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때의 내가 얼마나 나답지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