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마세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by 더블와이파파

내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무시당하는 걸 참지 못했다.

그 감정은 ‘자격지심’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임들이 질문을 하면, 나도 잘 모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땐 에둘러 아는 척하며 상황을 넘기곤 했다.


‘모른다’고 말하면, 무시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연히 선임의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됐다.


한 후배가 질문하자, 그 선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알아보고 말해줘도 될까?”


그 말이 왜 그렇게 멋져 보였을까?

억지로 아는 척하던 내 모습이 스쳐갔다.

선임의 그 태도는 오랫동안 잔상처럼 남았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건, 무시당할 일이 아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는 척하지 않았다.

사실 질문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답하는 사람의 말투나 태도만 봐도,

지금을 넘기려는 말인지, 진심으로 아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오히려 무시당하지 않는 자세였다.




신중년을 대상으로 강의하다 보면,

그분들의 오랜 태도와 습관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나는 최대한 쉽게, 천천히 강의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어떤 분들에게는 여전히 빠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한 사람의 속도에 완벽히 맞추기는 어렵다.

전체의 평균 속도를 유지하다 보면, 뒤처지는 분들도 생긴다.


나는 강의 중에도 그분들을 눈으로 지켜본다.

하지만 바로 대응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뒤,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는 분들이 있다.


괜찮다고 말씀드려도, 그분들은 미안해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 태도에 오히려 내 마음은 활짝 열린다.

이미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이 그런 여유를 만들어 준 셈이다.


강의 후에는 여러 단톡방을 운영하며 다양한 질문을 접한다.

며칠 전, 블로그 기초 강의를 마친 후 한 분이 본인의 블로그를 공유했다.

그 글을 보며 사진 한 장이 들어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을 넣어보시라고 권해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은 “못해요”라고 하셨다.


5.png


분명 전날 강의에서 다뤘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제 했잖아요”, “기억해 보세요”, “교재 보세요”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에 알려드릴게요.”


그 순간을 되짚게 하면,

‘역시 내가 기억을 못 해서 그런 거구나’ 하며 불필요한 자책을 하게 만들 수 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다음에는 질문할 용기를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몰라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분의 태도가 참 좋았다.

진심으로 그랬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고, 그분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음 강의 시간에는 먼저 다가가서 친절하게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아마, 그분은 그때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흔의 지점에서 돌아보는 내 삶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