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그때의 시절인연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를 선택하고 싶다

by 더블와이파파

예전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자주 맡았다.

모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가 중심이 되곤 했다.


누가 불편하지 않을까 살피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중간에서 애썼다.

모두가 편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했다.


마치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매번 내가 나서야만 굴러가는 모임이 피로하게 느껴졌다.


기대와 역할 속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때부터는 사람들을 안 보는 쪽이 더 편했다.


추석 다음 날,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두 번 안부를 주고받은 기억은 있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몇 번의 통화조차 희미하다.


처음 전화가 울렸을 땐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 시각, 나는 처가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뒤에 다시 전화가 왔다.

그제야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는 걸 알았고, 전화한 사람이 그 친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무슨 감정인지 명확히 짚을 수는 없었다.


반가움보다는 묘한 부담감이 앞섰다.

결국 두 번의 전화는 그대로 지나갔고, 나는 끝내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 이어지는 연휴에는 가족들과 함께 아울렛에 갔다.

역시,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딜 가도 복잡한 매장, 길게 늘어진 대기 줄.

아이들도 지쳐서 짜증을 냈고, 나 역시 기운이 빠졌다.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할 때, 피로감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그때, 반대편 에스컬레이터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직장 동료였다.

지금은 다른 회사로 이직해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한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


연락이 끊긴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나는 그냥 스쳐 지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도 어색하지 않게 웃으며 인사했지만,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때의 감정은 자격지심에 가까웠다.


요즘 내가 유일하게 연락하는 친구 한 명이 있다.

그 친구는 점점 멀어지는 내 인간관계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나는 늘 웃으며 대충 넘긴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이제는 애써서 이어가는 관계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일부러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걸 그 친구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란 참 묘하다.

내가 애쓴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맺은 인연이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그저 스쳐가는 시절의 인연이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


가끔은 그런 인연을 선택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되묻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지만,

더 좋은 마음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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