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신중년과의 만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강의 현장에서, SNS를 통한 소통에서, 그리고 일상 속 마주침을 통해 그분들을 만난다.
다만 일상에서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탓에,
이번 글에서는 강의와 SNS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조심스러운 표정,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많은 분들이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라는 눈빛을 보인다.
궁금해하지만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땐 두 가지 방법으로 알림을 드렸다.
첫째는, 예상되는 질문을 미리 설명하는 방식.
둘째는, 직접 묻는 방식이다.
"어떤 게 궁금하세요?"라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런 대응은 오롯이 내 경험 덕분이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분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먼저 알려주는 방식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치 부모가 아이의 실수를 막아주듯, 나는 너무 많은 걸 대신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중요한 학습 기회를 빼앗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찾도록 도와야 했다
강의가 끝나면 질문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 그 점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강의 중에도 ‘자립적인 학습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바꿨다.
혼자서도 시행착오를 겪고, 궁금한 것을 찾아가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 혼자 할 수 있을까요?”
강의 말미, 몇몇 수강생은 아쉬움보다 걱정을 먼저 꺼냈다.
“이제 정해진 환경이 끝나면, 내가 혼자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요?”
나는 말했다. “글로도 계속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도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요.”
성장하려는 마음이 있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나는 내 채널을 늘 열어두었다.
강의 첫날,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여러분을 뵐 때, 저는 나이를 기억에서 지웁니다.
밖에서는 예우를 갖추지만, 강의 시간만큼은 동등한 위치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에요.”
이 말을 들은 수강생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나이 때문에 배움이 방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전해진 순간이었다.
“나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이 들릴 때가 있다.
때로는 한숨이, 때로는 짜증이 섞여 있다.
나는 그 말에 동조하지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잘할 수 있다는 말도, 솔직히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안 될 수도 있다”는 말 대신,
“느리더라도 따라오겠다는 분들을 끝까지 돕겠다”는 말이 더 긴 호흡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정이 끝날 무렵이면, 대부분은 나의 진심을 알아주셨다.
최근, 나에 대한 비판도 종종 접한다.
내 글과 활동에 대한 비평은 괜찮다.
하지만 어른들을 향한 내 마음이 왜곡되어 전달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건 솔직히 조금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