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현주

by 민달이

* 슬래그: 용접할 때 나오는 철의 불순물--


현주의 행동이 이상하고 느낀 건, 뱃속의 아이가 4개월이었을 때였다. 조심해야 한다고 해도 현주는 자주 외출했다. 혁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잠만 잤다. 처음, 아이를 가진 걸 알았을 때 현주는 화를 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 불안한 마음에서 나온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좀 달랐다. 현주의 분노는 다른 곳에 기인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주 배를 주먹으로 내리쳤고 아무 때나 술을 마셨다. 현주를 말리고 달래느라 일을 못했던 적도 많았다. 일을 하는 동안 현주가 무슨 짓을 할지 두려웠다.


혁에겐 아이보다 현주가 먼저였다. 가게를 닫아걸고 아내 곁에 있었다. 한 달 정도 지속된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분노가 다행히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산모들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자신은 괜찮으니 걱정 말아라. 잠시 불안해서 그랬다며 오히려 혁을 달랬다. 혁은 안도했고 감사했다. 다시 문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현주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조금씩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외출했다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를 낳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현주는 사라졌다.

참담했다. 분노도 증오도 모든 감정을 하나의 것으로 다스렸다. 그러기 위해선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고 혁은 그렇게 했다. 아이가 보일만큼 조금 열어 둔 채 일을 했다. 한참 용접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아기 우는 소리가 세차게 났다. 왈칵 우유를 토해내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었다. 잠든 아이를 안고 병원을 나서다가 다시 돌아가 간호사 앞에 섰다. 엄마가 없어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울먹이는 혁을 바라보았다. 버리실 건 아니죠? 혁은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걸 용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주는 떠났다. 당장 찾아내어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오냐 그렇게 못 헤어지겠다면 내가 두 년 놈을 잡아서 용접기로 완벽하게 붙여 주마. 이를 갈았다. 어느 날은 정말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쳤다. 아이는 자신의 팔뚝 근육보다도 작았다. 혁은 까만 아이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방긋 웃었다. 아이의 웃음을 보는 혁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윙윙윙, 시끄럽게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혁은 철을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그래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지만 역시나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도 하기 싫다는 걸 강요하는 자신을 생각하자 쓴웃음이 나왔다. 왜 그토록 이 일을 하라고 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일까.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하지만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녀석이잖은가. 언제부터인가 싸움이나 하고 있고 학교는 뒷전이고. 공부엔 관심도 없고 그깟 책 좀 좋아 하는 거? 그 쓸데없는 소설 나부랭이 몇 권 읽는 게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냔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나라에서 주는 자격증을 따야지. 암.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당당히 먹고 살 것 아닌가. 혁은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중얼중얼 말을 내뱉었다. 세탁기는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퉁탕거리며 시끄럽게 돌아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혁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불도 켜지 않고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혁은 띠리링- 세탁기가 종료되는 소리에 일어섰다. 어두운 방안에선 TV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만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작업복과 걸레들을 꺼내서 탈탈 털었다. 작업복 여기저기 헤진 데가 많이 보였다. 통 안에 남아있는 걸레를 마저 꺼내고 문을 닫으려다 보니 밑바닥에 까만 쇳가루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작업복을 돌리고 나면 늘 검은 쇳가루가 통 안에 남아 있었다. 깨끗이 빤다고 빨아도 마찬가지였다. 혁은 쇳가루를 집어 만져 보았다. 차고 단단한 쇳덩어리들을 만지다가 곱고 부드러운 쇳가루를 만져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몇 번씩 집어서 비벼보다가 휴지에 침을 묻혀 쇳가루를 닦아냈다. 이 놈의 세탁기도 곧 고장이 나겠구만. 털털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이 미세한 쇳가루들이 세탁기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 반짝이는 부품들에 녹이 슬겠지. 혁은 두 세번 휴지를 접어 세탁기 안을 훝어 내고나서 바닥에 꺼내 놓았던 빨래를 널었다.


티비를 마저 보다가 깜빡 졸았다.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철의 방문을 열어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녀석이 자고 있었다. 혁은 철의 머리맡에 서서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다리를 접고 자는 게 꼭 자신과 닮았다. 물끄러미 철을 내려다보던 혁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어금니에 힘을 주며 어둠속에 서 있었다. 둥근 이마. 현주를 닮은 이마가 예뻐서 어린 철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날들이 떠올랐다. 혁은 잠이 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다. 또 싸움을 하고 왔는지 눈가가 찢어진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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