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민

by 민달이

* 웨이스트: 기계를 닦는 걸레--


철은 벽에 기댄 채 공포에 질린 성민을 보고 있었다. 석주가 며칠째 녀석의 주머니를 털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구경이 있다는 석주의 말에 생각없이 나선 길이었다. 석주와 원포인트 멤버 몇 명이 겁에 질린 성민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차 골목으로 몰아넣으며 오고 있었다. 벽에 기대고 있던 철을 본 성민이 깜짝 놀라며 간절한 눈길을 보냈지만 철에게 가 닿지 못했다. 철도 성민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는 얼굴이었다. 녀석이 언젠가부터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저 공기 같은 존재일 뿐 거슬리는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구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만든 상황은 스스로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번번이 눈빛이 차단당하자 포기한 듯 성민은 머리통을 내리치는 석주에게로 눈을 돌렸다.


-잠깐만!

개미 같던 성민의 목소리가 커지자 석주가 재밌다는 듯 어쭈! 즐거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곧바로 석주의 손이 성민의 뒷통수를 다시 가격했다.

-왜! 왜 이 새꺄! 왜!

-우 우리 동네에 미친 노인이 있어!

성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근데! 근데 이 새꺄 근데, 어쩌라고!

다시 한 번 석주가 팔을 번쩍 들어 올리자 성민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철은 벽에 기댄 채 석주와 성민을 보았다.

-아니! 아니! 거대한 물고기들이 정액을 막 싸지른댔어!

-뭐? 아, 이 새끼 존나 골 때리네?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캬캬캬캬


석주와 아이들이 재밌다는 듯 웃어대자 성민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작은 불빛이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성민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까 겁이 나는 듯 다급히 소리쳤다.

-보여줄 수 있어! 보여줄 수 있다고! 진짜라고!

뒤통수를 내리치던 석주의 손이 멈췄다. 성민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석주가 노려보자 성민은 말할 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다시 소리쳤다.

-진 진짜! 완전 또라이야. 가끔 큰 길에서 똥도 싸! 진짜야! 가보면 알잖아...

-뭐? 크크크 좋아 가보자. 너 뻥이면 오늘 뒤지는 거야.

석주는 성민의 뒤통수를 벅벅 헝클이며 웃었다. 성민은 떨어진 가방을 주우며 마치 자신이 무자비한 싸움에서 이긴 듯 입가의 피를 거칠게 닦았다.


석주와 멤버들이 주춤주춤 걷는 성민의 뒤를 따랐다. 성민은 불안한 듯 가방끈을 손에 꽉 쥐고 몇 걸음 가다가 뒤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석주가 성민을 향해 꽥꽥 거리며 웃었다. 10분쯤 걷자 성민이 멈췄다. 저.. 저기야... 손가락이 가리키는 모퉁이를 도니 편의점이 보였고 정말로 그 앞에 지저분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석주가 오! 씨바, 진짜 있어! 소리쳤다. 노인은 소주를 옆에 놓고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뭐라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사람들은 노인이 보이지 않는 듯 빠르게 지나쳐갔다. 석주가 성민의 등을 밀치며 턱으로 신호를 했다. 성민을 선두로 하나둘 아이들이 모여 들자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누구냐.

한 발짝 떨어져 있어도 입 냄새가 난다는 듯 석주가 코를 감아쥐며 말했다.

-아 구려 씨!

다른 원포인트 녀석이 큭큭 웃었다.

비스듬히 앉은 노인이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도둑고양이들이로구나!

그러자 석주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영감! 미쳤다는 거 진짜야? 길가에 똥도 싼다며?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눈을 치켜뜬 노인이 석주를 보며 말했다,

-어디보자... 니 놈은 성질이 드러운 종이었겠고.


석주가 인상을 썼다. 그때 갑자기 노인이 아주 중요한 말을 하는 사람처럼 몸을 일으켰다. 지나가던 초등학생 여자아이 세 명이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일었는지 조르르 달려와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어린 여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자 노인이 작은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하며 좋아했다.

-그래 그래야지! 봐라 아가들아.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석주와 원포인트멤버들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고 어린 여자아이들이 신난다는 듯 네! 크게 소리쳤다.

-그래그래 아주 중요한 얘기 하나 해주지.. 이건 아무도 모르는 얘기야. 음... 얘들아 너희들을 누가 낳았니?

-엄마와 아빠요!

-잘 아는 구나.

-그럼 엄마 아빠는?

-할머니

-그럼 그 할머니는?

-증조할머니

-아씨 모야!

석주가 유치하다는 듯 바닥에 침을 뱉으며 짜증을 냈다.

-자자, 들어봐라. 그럼 인간이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나님이요! 아냐, 원숭이가 진화한 거잖아! 여자아이들이 앞 다투어 말했다.

-틀렸다. 인간의 조상은 물고기였다.

석주 옆에 있던 원포인트 멤버중 하나가 어리둥절한 듯 속삭였다.

-뭐? 원숭이가 아니구?

그러자 신이 난 듯 노인이 손바닥을 비비며 다시 말했다.

-에헤이. 이것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들어봐라. 사실, 우리의 조상은 물고기란다. 아주 먼 옛날, 지구가 시작되고 나서 물고기가 땅위로 올라 온 거지.

그러자 석주가 못 참겠다는 듯 소리쳤다.

-개 뻥! 이 영감탱이가 어디서 구라야!

석주의 말이 노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부드러운 표정이었던 노인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고 흰자위를 번뜩이더니 더러운 이를 드러내며 크게 소리쳤다.

-이 쥐똥만도 못한 것! 우리 집엔 너 같은 애새끼들의 뼈를 갈아 만든 도자기도 잔뜩 있어! 네 놈들을 내가 다 잡아 먹도 시원찮다!


노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여자 아이들이 끼아악! 소리치며 달아나자 석주와 녀석들도 덩달아 흩어졌다.

멤버들은 옆 골목에 모여 허리를 꺽으며 킥킥 댔다.

-와, 또라이 영감 놀래라!

멤버중 하나가 가슴을 쓸어내며 외치자 석주가 코를 잡으며 말했다.

-와, 냄새! 콧구멍 썩어 나가는 줄 알았어!

석주가 카악, 퉤. 침을 뱉으며 인상을 썼다. 누군가 노인흉내를 내며 잡아먹는다고 소리치자 멤버들이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킬킬거렸다. 뒤에 쳐저 그 모습들을 보고 있던 철은 성민이 벌써 도망가고 없다는 걸 알았다.


다음날, 철은 그 노인이 있던 곳을 찾아갔다. 동네 어귀를 돌아 편의점 쪽을 바라보니 지저분한 모습의 어제 모습 그대로였다. 소주병을 옆에 두고 졸고 있는 듯 고개가 아래위로 까딱까딱 움직였다. 마구 엉킨 잿빛 수염, 때가 낀 손톱, 어두운 색이어도 낡고 더러운 게 고스란히 보이는 티셔츠. 하얀색이었을 잿빛 운동화는 뒤로 꺾어 신고 있었다. 꺾인 운동화 속에서 끔찍한 악취가 피어오르는 것 같아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노인의 얼굴은 멀리서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주름이 보일 정도였다. 철은 벽에 기댄 채 다시 한 번 노인을 훑어보았다. 부아앙-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놀란 듯 노인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자세히 보니 전체적으로 더럽긴 해도 어쩐지 미친 노인 같아 보이진 않았다. 재미있는 영감이네. 철은 모퉁이에 서서 노인이 다시 잠드는 걸 지켜보다가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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