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괴물

by 민달이

혁은 거울 속에서 괴물의 흉측한 모습을 마주했다. 세 번. 혁은 그 노란 눈빛의 괴물을 만났다. 처음 그놈을 똑바로 본 것은 철이 9살 때였다. 학교에서 소풍이 있던 날, 김밥을 싸주지 않은 혁을 향해 아빠가 밉다며 울었다. 나는 아빠가 싫어! 아빠 아들 안 할래! 어린 철은 아빠를 원망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것이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외침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혁은 순간적인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혹사시켰던 몸이 고장 났는지, 며칠 전부터 으슬으슬하다가 소풍 전 날 탈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사 놓았던 김밥재료는 쓰지도 못하고 대충 햄에 맨밥을 보냈다. 그러자 소풍을 다녀온 녀석이 울고불고 도시락을 내던졌다. 그 순간 혁은 거울 속에서 샛노란 눈빛의 괴물을 보았다. 어린 철의 종아리가 터지도록 매질을 하며 거울 속 놈의 눈알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걸 보았다.


두 번째 괴물을 만난 건, 철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동네 아이들과 밴드를 한다며 몰려다니는 것도 모자라 예고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특별하다고 했어. 녀석은 흥분한 것 같았다. 혁은 벗어 놓았던 용접면을 다시 쓰며 말했다. 그런 말은 아무한테나 하는 거야. 아이들을 달래려고 선생들이 자주 하는 말이란 말이다. 아! 진짜야! 진짜로 한번 찾아와 보라고 했다고! 혁은 용접면을 다시 내려놓았다. 침착하게 용접기의 전기를 먼저 차단했다. 무어라 입을 떼야하나 생각했다. 현주가 떠올랐다.‘예술가가 돼 봐! 나를 잡고 싶으면 그렇게 해봐!’현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철은 독이 잔뜩 오른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증오로 가득했던 현주의 눈빛과 너무도 똑같았다. 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더 이상은 아빠와 안 맞아서 못 살겠다고 당장이라도 소리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혁은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철에게 말했다. 그런 말은 믿으면 안 돼. 책임감 없이 지껄이는 말들에 현혹 되선 안 된단 말이다. 먹고 살려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녀석은 절대로 굽힐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슬금슬금 샛노란 분노가 일기 시작했고 다시금 괴물이 깨어나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옆집 박씨가 주문한 사다리를 만드는 중이었던 혁은 결국, 그 날 제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사다리를 박살내고 중학생이던 철에게 손을 댔다. 사다리의 진행상황을 물으러 온 박씨가 아니었다면 철이 어떻게 됐을지 아무도 몰랐다. 혁의 근육들은 분노로 응집된 듯 보였고 막 폭발을 시작한 무시무시한 화산 같았다. 다행히 박씨의 도움으로 철은 그곳에서 빠져 나왔다. 철이 보이지 않아도 괴물은 집요하게 혁을 따라다녔다. 집안의 모든 거울을 깨 부셔도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 번째로 괴물을 보았던 건 얼마 전, 고등학교 2학년이던 철이 정학처분을 받았을 때였다. 혁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훌륭한 용접 기술자로 만들고자 했지만 철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관심이 없었다. 졸업만 시켜서라도 곁에 두고 가르치자 싶었다. 그러나 학교 선배의 죽음을 빌미로 문제를 일으켰다. 혁은 자주 학교로 불려갔고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자신을 달래려 노력했지만 실패였다. 이번에 나타난 괴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돌처럼 크고 단단해진 철은 이제 괴물의 공격에도 쓰러지거나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괴물이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물어뜯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참아 낼 만큼 녀석은 자랐던 것이다. 혁의 젊은 시절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철은 두 눈을 똑똑히 뜨고 괴물의 끔찍한 난동을 견뎌냈다. 지칠대로 지친 괴물이 타액을 내 뿜으며 숨을 몰아쉬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혁이 돌아보자 괴물은 사라지고 거울 속에는 늙고 지친 남자만 남아 있었다.


이상한 건, 그 괴물이 엉뚱한 곳에서도 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복수와 증오로 만들어진 녀석은 공포와 고통을 먹고 자랐다. 그것은 오직 한가지에만, 현주에 관한 복수와 증오에만 반응해야 했다. 하지만 가끔 엉뚱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튀어나와 혁을 당황시킬 때가 있었다. 한번은 철이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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