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쁜아빠

by 민달이

그날, 혁이 학교로 불려 간 건 철의 잦은 문제행동 때문이었다. 중학생이던 녀석은 급기야 고등학교 아이들과도 싸움을 했다. 담임은 혁을 호출했고 혁이 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공부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넌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고작 15살짜리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혁은 건들거리는 선생을 바라보았다. 담임은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저대로 두면 분명 깡패가 될 거라고 못을 박았다.


무시하는 듯 삐딱한 자세와 비웃는 표정. 나쁜 사람이다. 선생도 나쁜 선생이 있구나. 선생님이라면 모두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눈앞에 있는 자의 말투와 행동을 보며 깨달았다.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선생은 철을 교실로 돌려보낸 뒤 비스듬한 자세로 혁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문제아인 걸 알면서도 그냥 두시겠다는 겁니까? 담임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며 아이를 전학 보내는 쪽으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끝으로 면담을 마쳤다.


혁은 무기력하게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 그 순간, 무언가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치받쳐 올랐다. 학교에 다니며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살았을 철을 생각하자 심장이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문 쪽으로 한 발짝 옮기는데 담임의 책상 옆으로 작은 철제 선반이 보였다. 2단 선반의 조잡한 용접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석구석 언더커트와 오버랩이 즐비했다. 누군가 선반에 작은 힘만 주어도 무너져 내릴 게 뻔했다. 상태를 보니 늦어도 일주일 안에 부서져버릴 싸구려였다. 선반 위엔 고급스러운 난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설 때부터 머리가 벗겨진 나이 든 선생 하나가 난에 조심스레 물을 주고 이파리를 꼼꼼히 닦아대던 걸 떠올렸다.


철의 담임은 더는 혁을 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기름때가 묻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혁은 철제 선반을 스쳐 지나는 듯 다가가 어설픈 용접 부분을 손으로 잡고 꾹 힘을 주었다. 약한 선반에서 작게 뚝 소리가 느껴졌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화장실을 지나쳐 계단으로 가는 길에 쨍그랑 소리와 아악! 담임의 비명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혁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일주일이면 무너져 내릴 선반의 시간을 조금 앞당겼을 뿐이다. 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선생도 나쁜 선생이 있고, 경찰도 나쁜 경찰이 있고, 엄마도 나쁜 엄마가 있는 것이다. 철에게 나쁜 아빠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혁은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현주가 떠나고 이틀 동안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혁은 그저 멍한 상태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일을 했다. 옆집 아줌마가 달려와 아이를 들쳐 안고 호되게 욕지거리를 해 준 탓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이를 3일만 맡아 주십사 부탁하고 현주를 찾아다녔다. 처음 회색말꼬리를 만났다던 춘천과,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며 자주 다니던 영등포를 샅샅이 뒤졌다. 할 수 만 있다면 현주를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주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나라 어디에도 현주는 없는 게 확실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며칠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냈다. 술을 마셨고. 일을 했고. 술을 마신 상태로 일을 했다. 보르반에 손이 말려들어가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두 마디씩 잃었다. 다행이었다. 오른손을 잃었다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뻔했다. 혁은 이것이 하늘이 주는 경고라고 생각했다. 손가락을 잃고 나서야 아이를 제대로 보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날부터 혁은 동네 가게들의 주방 가구와 사다리를 만들면서 조금씩 놓쳤던 삶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키워야 했으므로.


혁은 왼손을 습기가 찬 버스 창문에 갖다 대었다. 손을 떼자 커다란 그의 손자국 모양이 그대로 드러났다. 혁은 그날,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세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뭉툭한 살덩어리의 형태가 찍힌 창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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