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버랩: 용접이 녹지 않고 겹쳐지기만 한 부분--
벤슨이 사람을 죽이고 배를 탔다는 소문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보통사람의 두 배가 넘는 거구에 한 손으로 공의 머리통을 잡고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손. 마치 긴팔 옷을 입은 듯 손목부터 시작된 문신은 알 수 없는 글자들로 상체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아무도 그런 벤슨의 몸을 똑바로 본 사람이 없었다. 친하다고 하지만 공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벤슨은 늘 입에 쿠바산 시가를 물고 있었으며 거대한 손가락 끝까지 곱슬곱슬한 금빛털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저 손으로 몇 명을 죽였을까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의 정확한 과거가 드러나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벤슨이 갑판에 누워 낮잠을 잘 때 어떤 용감한 아랍인이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본 적이 있는데 다음날로 짐을 싸고 그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 뒤로 벤슨의 몸에 있는 문신은 마피아들만이 쓰는 암호이거나 악마를 신봉하는 자들의 주문 일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벤슨은 유독 공에게 친절하게 굴었다. 조금 거친 면이 있었지만 공도 그렇게 느꼈다. 어느 날 공은 용기를 내어 벤슨의 문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 말야..
-이거? 이게 왜?
-그거... 소문 도는 거 알아?
-아...
눈치를 보던 공이 입을 열었다.
-진짜 마피아 족보... 맞아?
공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주먹이 날아오지 않는 걸 보니 번쩍 들어 바다에 처박으려는 건가 생각했다. 살짝 눈을 뜨자 벤슨의 커다란 얼굴이 공의 코앞에 있었다. 공은 놀라서 버둥거리다 바닥에 쿵 엉덩방아를 찧었다. 벤슨이 허리를 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성경구절이야.
-뭐? 뭐?
공은 벤슨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스크리스트어로 새겨 달랬거든.
공의 얼굴에 공포가 짙게 묻어났다.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거야?
-공!
-아무에게도 말 안할게. 난 친구도 따로 없잖아.
벤슨이 미간을 찌푸리며 갈색의 쿠바산 시가를 꺼냈다. 끝부분을 튼튼한 이로 뜯어 바닷속으로 퉷 뱉어 버리고 불을 붙였다.
-성경구절 맞아. 바보들이 하는 말은 나도 들었어. 그냥 뒀을 뿐이야.
공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의심의 눈으로 벤슨을 바라보았다.
-그럼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 다니는 중이라는 건 뭐야? 봤다는 사람도 있던데.
공은 입안에서 빙빙 돌던 질문을 에라모르겠다 던져버리고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 그거!
벤슨이 피식 웃었다. 왠지 오금이 저릿저릿 했다.
-너 정말 사람을 죽인거야?
갑자기 그가 껄껄거리기 시작했다. 공은 다시하번 용기를 내어 물었다.
-다들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봐.
공의 떨리는 목소리에 벤슨은 시가를 입에서 빼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한 손을 이마에 대고 한참을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공은 벤슨의 손등위에서 반짝이는 금빛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황금빛의 그것은 아름답고 외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무언가 결심한 듯 이마에서 손을 내린 그가 공에게 몸을 돌렸다. 해를 등진 벤슨이 거대한 그림자괴물로 보여 덜컥 겁이 났다.
-공. 이건 정말 처음 말하는 비밀인데...
공은 다시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벤슨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몸을 숙여 공의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켜줄 수 있지?
갑자기 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 같아 공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걱.. 걱정하지마.
-그거 말이야....
-응.
벤슨의 얼굴에 걱정스런 빛이 스쳤다.
-음... 실은 내가 낸 소문이야.
공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벤슨을 올려다보았다.
-뭐라고?
벤슨이 히죽 웃으며 공의 얼굴로 연기를 내뿜었다. 콜록거리던 공은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니가 니 입으로 그런 거라고?
-응.
-아니! 왜?
그가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그래야 다들 귀찮게 안하니까. 난 파리떼처럼 모여드는 것들이 싫거든.
-벤슨!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이놈의 거대한 몸뚱이 때문에 나를 가만두는 녀석들이 없어. 싸워보자며 시비를 걸지 않나. 지들이 하기 싫은 건 다 나한테 시키고. 심지어 이 구역 깡패들한테 러브콜까지 받았지 뭐야. 그래서 장난 좀 쳤지.
-벤슨!
공의 목소리에 벤슨이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난 그저 믿고 싶은데로 믿으라고 뒀을 뿐이야. 다행히 이 문신 때문인지 칼자국 하나 없어도 모두가 믿는 눈치더라구.
그러고 보니 살인자며 마피아라는 벤슨의 몸에 작은 칼자국하나 없었다. 뭐야, 이런 사기꾼! 공은 벤슨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커다란 입으로 히죽 웃던 벤슨이 황당해하는 공의 얼굴에 자신의 거대한 팔뚝 문신을 가져다 댄 뒤 손가락으로 한자 한자 짚으며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고 나라에 임하옵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