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킹: 시침질처럼 임시로 살짝 용접해서 조립하는 것--
5월의 지중해는 유독 아름다웠다. 한 번도 본적 없는 푸른빛으로 넘실거리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 어떤 보석 보다 빛나는 바다. 해가 10시 방향에 떠 있었다. 뜨거웠고 목이 말랐다. 공은 미지근하게 데워진 물을 드럼통에서 한바가지 퍼 마셨다. 아직 가시지 않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가지를 드럼통 안으로 던지자 물의 표면으로 퍽,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 소리에 옆에 있던 거대한 체구의 벤슨이 몸을 일으키며 공에게 말했다.
-작업이 시작되면 지루할 틈이 없을 거야. 베이비.
공은 자신보다 덩치가 두배는 큰 코쟁이가 베이비라고 부르는 게 기분 나빴다. 그는 처음 본 순간부터 베이비라고 불렀다. 유독 키가 작고 왜소하긴 해도 베이비 소리를 듣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공! 공이라고!
공의 말에 벤슨이 어깨를 들썩이듯 제스처를 크게 하며 말했다.
-꽁? 그게 무슨 뜻이야?
-내 이름말이야. 음... 그래 볼 알지? 볼! 영어로는 그래.
-오! 볼!
그 이후로 벤슨은 그를 볼이라고 불렀다. 공의 어깨를 잡아 아래로 찍어 내리듯이 힘을 주었다. 벤슨은 거대한 체구를 이용해 자주 공의 몸을 짓누르는 버릇이 있었다.
10여척의 배들이 무리를 이뤄 항해하고 있다. 다른 배 위에 있던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묵묵히 물살을 가르며 지중해의 좁은 해협으로 나아갔다. 산란을 위해 지중해로 모여드는 참치 떼를 잡기위해 놈들이 지나는 길목에 길게 그물을 드리웠다. 그물을 내린 세 척의 배가 디귿자 모양으로 방의 문을 열어 놓고 숨죽여 기다린다. 어부들의 우두머리인 메르세가 멀리 녀석들의 길목에 대기하고 있던 잠수부에게 손짓을 했다. 오케이 사인을 한 잠수부가 물속으로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 모습을 드러냈다. 50미터 너머로 거대한 물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부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진이 난 듯 물결이 사방으로 부서져 나갔다. 피우던 담뱃재를 바다로 던지고 긴장한 표정으로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수 많은 은빛 지느러미들이 햇살을 받아 번쩍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저 어리석은 무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방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잠수부가 빠져나오자 참치무리가 벤슨과 공이 타고 있는 배 쪽으로 점점 빠르게 몰려왔다. 무리가 모두 들어왔을 때, 입구를 맡은 어부 하나가 얼른 배를 돌려 방의 문을 닫았다. 이제 완전히 사각의 그물에 갇혀버렸다. 사방으로 아무데도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때, 죽음을 직감한 놈들이 거대한 지느러미로 미친 듯이 물을 튀기며 여기저기 몸을 부댔다. 어부들은 각자의 자리에 서서 참치들을 향해 작살을 던졌다. 작살에 걸린 참치들을 한 마리씩 건져 내자마자 밑에 자리 잡은 다른 조가 퍼덕이는 놈들을 끌어안아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단번에 칼을 쑤셔 넣었다. 그러자 시뻘건 피가 순식간에 배 위로 퍼져 나갔다.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녀석들은 서로의 피 냄새를 맡았고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지막일지도 모를 산란을 위해 애썼다. 핏물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뱃속에 품고 있던 알을 푸른 바다위로 힘껏 흩뿌렸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알들은 죽음의 그물 사이를 조용히 빠져 나갔다. 살육의 방에서 혼돈의 싸움이 일고 있을 때 말랑한 알들은 깊은 바닷속으로 유유히 부드럽게 사라져 갔다.
벤슨의 근육은 녀석들의 심장을 찌를 때 더욱 불거졌다. 공의 어깨를 찍어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치 몸통을 힘주어 잡았다. 벤슨의 온 몸으로 핏물이 튀었다. 공은 비위가 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부림치는 참치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선원들의 힘도 빠지고 있었다. 거의 잠잠해졌을 때는 바닷물이 완벽하게 붉은 색으로 변해 버렸다. 어부들은 지친 듯 배위에 눕거나 잠시 기대 앉아 숨을 돌렸다. 참치들을 가뒀던 방은 시뻘건 물로 가득했다. 핏물로 범벅이 된 어부들이 몸을 돌려 반대편 난간에서 푸른 바닷물로 몸을 씻었다.
함정그물이 걷히고 배들이 위치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핏물이 물감을 풀 듯 자연스럽게 푸른 물로 스며들며 점점 붉은 빛을 잃어갔다. 죽음의 바다는 금세 생명의 바다로 둔갑했다. 배들은 거대한 참치 떼를 실고 부두로 향했다. 공과 벤슨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시가를 나눴다. 둘은 물살을 가르는 배 위에 서서 해가 아직도 강렬하게 타들어 가는 걸 오래도록 바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