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레이터: 용접비드 끝단부에 생기는 옴폭 들어간 부분--
혁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몇 번이고 연습을 시킬 것이다. 싫다고 해도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철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았다. 자주 얼굴이 상해서 들어왔다. 반항을 하는 걸까? 자신에게 하지 못한 불만을 밖에서 터트리고 다니는 것인가? 혁은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복수로 시작된 거대한 계획에 자꾸만 다른 감정이 개입되곤 했다.
어쩌면 정말로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작은 동물을 기를 때도 나타나는 감정일 테니 걱정할 것 없다고 자신을 달래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으니 감정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되뇌었다. 중요한 건 사실을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혁은 생각했다. 녀석이 현주와 회색말꼬리의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심장 한쪽이 싸해오거나 하는 날이면 끊임없이 되뇌었다.
다 큰 녀석을 통제한다고 해도 이미 그것은 통제가 아닐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만 보여줄 뿐. 정작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부모 모르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였다. 통제를 또 다른 통제라는 이름으로 비웃어 버릴 수 있을 만큼 녀석은 머리가 커버렸던 것이다. 혁이 자재를 정리하고 있는데 철이 킬킬거리며 가게로 들어섰다. 거리를 내다보자 철만큼이나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녀석 여럿이 서로의 머리를 툭툭 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혁은 철에게 말했다.
-혹시나 나쁜 짓은 하지 말아라.
-무슨 말이야?
-자꾸 여기저기 터져서 나타나니 하는 말이야. 싸움이야 할 수도 있고 한데... 이해가 되는 정도로만 놀라는 말이다.
-오자마자 뭐야. 내가 뭘 어쨌다고!
철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한테 중요한 건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전부다. 한심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세계다. 너도 언젠가는 니 세계를 찾아야겠지만.
-용접이나 하고 살라매 세계는 무슨 놈의 세계.
철이 입을 비죽이며 대꾸했다. 혁은 대답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뭐랄까... 용접을 하는 순간순간 생기는 비드의 모양을 보면 말이다. 내 속에서 그것들이 빠져나온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하거든. 내 온 몸을 짜내서 만드는 경이로운 거 말이다.
혁의 말을 듣던 철이 음흉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이 녀석, 뭔 생각을 하는 거냐!
그 속을 다 안다는 듯 혁은 미간을 구기며 나무랐다. 어느새 벌써 사내가 됐다고... 혁은 잠시 감상에 빠진 자신을 서둘러 마른 땅위로 끄집어냈다. 빠르게 손을 비비며 주위를 환기 시키듯 말했다.
-자자. 가방 갖다 놓고 나와라. 오늘은 다른 걸 해보자.
-나 지금 왔거든? 좀 쉬고 하면 안 돼?
-내일부터 바빠질 것 같아서 그래. 어서 갖다 놓고 나와.
혁이 물러설 모습을 보이지 않아 철은 단념한 듯 방 안으로 가방을 던지고 가게로 들어섰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기분이 별로였다. 철은 아빠가 건넨 모재를 단단히 잡고 용접을 시작했다. 위이잉.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한쪽으로 튀었다.
-모토 속도가 빨라지잖아! 전류와 송급은 테크를 한방 놓고 그 다음에 잘 맞는 지 상태를 확인해야지!
벌써 두 시간. 화가 난 철이 용접면을 벗자 땀으로 범벅이었다.
-문이라도 좀 열던지!
-바람맞은 용접부는 스펀지처럼 거품이 생겨서 못쓴다.
-지금은 연습이잖아!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철은 서운했다. 조근조근 가르쳐 주기라도 하던가. 이건 무슨 자기가 조련사인 줄 아는 모양인지. 학교에서도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철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그래 언제까지 하나 보자 싶어 다시 용접면을 썼다. 불꽃이 일며 쇳물들이 흘렀다. 철이 용접하는 것을 지켜보던 혁이 다시 소리쳤다.
-따라다니면 안 돼!
철은 다시 자세를 고치고 용접봉의 속도를 늦췄다. 잘 되지 않았다. 짜증이 솟구쳐 참지 못하고 용접면을 벗으며 소리쳤다.
-안다고! 알아! 아는데 안 된다구!
-쇳물을 따라다니지 마라. 쇳물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진짜 용접사가 되는 거다. 아니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온 몸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입고 있는 작업복만 해도 끔찍하게 무거웠다. 거기다 면장갑위에 두꺼운 장갑을 또 꼈고 얼굴을 익혀버릴 듯한 용접면까지. 철은 오븐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건 형벌이 아닐까.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중인 것이라고 느꼈다. 더 이상은 도저히 못해 먹겠다. 이건 아니다. 철은 갑갑한 작업복을 모조리 벗어 던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혁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가우징으로 다 날리고 다시 해야 할 거다.
철이 짜증을 냈다.
-아씨, 어쩌라구!
혁이 안타까운 눈으로 철을 보았다.
-니가 엉망으로 해서 공기압으로 죄다 날려야 한단 말이다.
혁은 돌아서 철공소 뒷문으로 나섰다. 니가 이 일에 뜻이 없긴 없는 모양이구나..., 혁은 마당을 건너 집으로 들어가 찬장에서 소주와 잔을 꺼냈다. 샤워를 마치고 쿵쾅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는 철을 혁은 쳐다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