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달님 안녕?

by 민달이

* 모재: 용접 또는 절단되는 금속--


정학이 끝나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담임이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은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며 가게에 머리를 들이밀고 학교 올 날이 며칠 남았는지 소리치고는 사라지기도 했다. 혁은 담임에게 달려가 덥석 손을 잡았다. 철은 하는 수 없이 학교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선생 때문인지 아빠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철은 마음을 돌렸다. 혁은 그런 아들의 모습에 기뻤다.


정학이 끝나는 날 혁은 삼겹살을 세근이나 사와 저녁 내내 고기를 구웠다. 지글지글 돼지고기의 기름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렸다. 달궈진 철판위에서 고기가 익으며 연기를 내뿜자 고소한 냄새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철은 코를 벌름거리며 철공소 안으로 들어섰다. 혁이 철판위에서 용접기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축하파티하자!

-누가 보면 장학금 탄 줄 알겠어.

-아빠는 그것보다 더 좋다.

철은 고개를 흔들며 옆에 쌓여있는 평철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꼭 이렇게 먹어야 돼? 그냥 안에서 먹지?

철은 젓가락을 쪽쪽 빨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먹어보고 말해. 고기는 불 맛이다. 3천도가 넘는 불 맛엔 어떤것도 댈게 아니지.

혁은 순식간에 바싹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집어 철에게 건네고는 확신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어떠냐? 고작 천도 남짓으로 굽는 거랑은 냄새도 맛도, 차원도 다르지! 암.


용접기의 불꽃을 조절하며 고기를 얹었다. 벌건 고기는 뜨거운 철판에 닿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익었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던 철이 본격적으로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혁이 동의하냐는 투로 물었다.

-죽이지?

-원래 고기가 다 맛있지.

철은 쩝쩝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말했다.

-뭐, 조금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불 맛도 모르는 놈아!

혁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철은 그러거나 말거나 연신 고기를 집어 먹으며 철판위로 고기를 더 얹으라고 손짓했다. 혁은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에 입을 데어가며 먹는 아들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돌멩이도 구워먹을 나이지. 철은 급하게 집은 고기가 뜨거웠는지 입안에 남은 열기를 빼려는 듯 머리채를 흔들었다. 술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던 혁이 말했다.

-다음에는 책상을 직소 커팅해서 철판과 연결해 봐야겠다. 고깃집 불판 테이블처럼 멋지게 될 거야. 그래 여기에 한쪽으로 놓고 둘이 같이 일하다가 가끔 이쪽에서 구워먹자. 아빠랑 소주도 한잔 하고 말이야! 일 끝나고 마시는 소주가 얼마나 단지 너도 알아야지.

-누구랑?

혁은 당연한 걸 뭘 묻냐는 얼굴로 철을 바라보았다.

-나?

철은 고기가 목구멍에 턱, 걸린 것 같아 꿀꺽 힘주어 삼켰다. 혁도 철의 그런 모습을 보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글지글 눈을 감고 들으면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철공소 안을 가득 메웠다. 느닷없이 현주가 생각났다. 철에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건 별로 없었다. 어린 철이 끈질기게 엄마에 관해서 묻자 혁은 마치 이것이 네 엄마의 소중한 유산이라는 듯 작은 책을 건넸다.

-이거. 니가 이걸 좋아했다.

6학년이던 철은 무릎위로 떨어진 책을 집어 들었다. 작고 귀여운 유아용 책이었다. 표지에는 <달님 안녕>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것만 남았구나. 그래도 엄마가 제일 많이 읽어준 책이다.

녀석이 엄마의 손을 잡는 것처럼 책의 표지를 쓰다듬던 모습이 떠올랐다. 현주가 철에게 책을 보여준 건 사실이었다. 집 앞에 있던 재활용쓰레기더미에서 책 몇 권을 주워와 꼬물거리는 아이의 눈앞에 더러운 책을 몇번 들이댔다. 그렇지만 읽어 준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배고파 울어도, 기저귀가 젖어서 울어도 현주는 귀찮다는 듯 책을 들어 눈앞에서 흔든 게 다였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 철에게 할 순 없었다.



철은 언젠가는 이 차가운 철로 된 세계를 벗어나 폭신한 달을 향해 날아갈 것이라 다짐했다. 책에 집착하게 된 건 그런 이유였다. 그 뒤로 가끔 책 속에 빠지곤 했다. 나쁘진 않았다. 지루하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던 일이 생각보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자신을 위로해주곤 했다. 싸움을 하고 난 뒤엔 더욱 갈증이 났다. 그것은 엄마가 있는 달님에게로 가는 길과 같았다.


특히나 <데미안>을 만난 뒤로는 자신의 세상이 너무도 끔찍하게 보였다. 한번, 두 번, 세 번째 읽었을 때, 철은 책이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을 알고 나자 깨지지 않는 거대한 강철알 속에 홀로 들어앉은 것 같아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두드리고 발로 차도 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 알의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텅텅 울리는 강철의 알 속에서 숨죽여 울어야 했다.


철이 가지고 있는 책은 고전이 대부분이었다. 특별히 유식한 취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다. 책이 무언지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도 알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 누구도 얘기해준 적이 없었으니까. 엄마가 읽어 줬다던 책이 철에겐 전부였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손에 넣은 문고판 책날개에 번호 순서대로 적혀 있는 세계문학 목록은 다음에 읽을 책을 알려주는 친절한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부터 철은 처음 손에 들어왔던 <데미안>의 책날개에 인쇄되어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읽었다. 다 읽은 책은 <데미안>의 책날개를 펴서 제목을 지워나갔다. 솔직히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제목을 지워내는 재미가 더 쏠쏠했다. 철의 책장에 헤세와 톨스토이, 고리끼가 있던 건 그런 이유였다.


철은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주문처럼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 느껴졌다. 지와 사랑, 부활, 이방인, 목로주점. 책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다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철은 많은 책들 사이에서 봉지에 넣어 보관해 둔 작은 손바닥 책을 꺼냈다. 딱딱한 종이는 세월이 흘러 여러 겹으로 벌어져 있었다. 선명하던 색도 조금씩 바랐고 오래된 종이의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다. 둥글고 노오란 달님의 웃는 얼굴만이 그대로였다. 철은 10쪽 밖에 되지 않는 그것을 천천히 넘겨가며 읽었다. 어딘지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첫 장에 있는 커다란 달님이 안녕? 하고 물었다. 철은 달님의 웃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전 15화14) 마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