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에도 저녁까지는 계속 비였지만, 잠깐 창문 밖을 보니 마침 거짓말처럼 반짝 개어 있었다. 마치 앞으로 삼 년 간은 비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씨다.
그래서, 천천히 집을 나서 어디에선가 봤던 샌프란시스코 동물원으로 향했다. 정말 이십 년 만에 가보는 동물원이다. 이전에 봐 뒀는데 뮤니 메트로를 타면 제일 마지막 정거장이 바로 동물원이었다. 나는 뮤니 패스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갈 충분한 구실이 있었다.
노선도를 보면 내가 탄 곳에서 다섯 정 거장 정도면 도착해야 하는데, 마지막 전 정거장에서 갑자기 지상으로 올라오더니 수십 개의 정거장을 거쳐간다. 벽의 노선도를 다시 보니 그 구간만 점선으로 되어있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정거장을 숨겨둔 것이다. 짜증 나긴 했지만 나라도 그 사이 정거장을 하나하나 다 적을 방법은 없었을 것 같으니 잊기로 했다. 뭐 이제 지상이니 창 밖을 보면서 천천히 가면 된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뮤니에 탄 수많은 사람들이 다 동물원을 가는 사람들이구나 했지만, 가는 도중 다 내려버리고 결국 나 혼자 남았다. 동물원 정거장에 내리니 살짝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바람은 미친 듯이 분다. 동물원으로 걸어가는 사람도 나 혼자다. 매표소에 가니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한 직원이 스피커를 통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지금 세시야. 근데, 우리 네시에 문 닫아. 오늘 날씨도 안 좋아서 동물들이 바깥에 안 나와 있는 경우도 많을 거야. 그래도 들어갈 거야?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냥 들어갔다. 이 넓은 동물원에 나 혼자뿐이다. 뭐 동물원이 별 것 있겠어하면서 설렁설렁 걸어 들어가다 보니 바로 앞에 기린 우리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기린을 이미 많이 본 사람이다. '이렇게 특색 없는 동물을 제일 앞에 전시해도 되는 건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린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오오옷.........
뭔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 밀려들었다. 목이 저렇게 긴 동물들이 머리도 흔들리지 않고 잘도 뛰고 있다. 무리지은 세 마리가 내 쪽으로 뛰어와서는 숨을 몰아쉬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야. 내가 말보다 더 잘 달려.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무심코 쳐다보니 눈이 너무 선 해 보여 가슴이 뭉클해진다. 옆 벽에 '동물들을 위해서 기부하세요'라는 푯말은 정말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인데, 바로 기부가 막 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겨냈다.
기린을 독대했던 감동을 억누르며 걷고 있는데 길 옆에서 누가 걸어온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공작이다. 뭔가 피곤하다는 듯이 느릿느릿 내 옆을 걷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를 탈출한 것 같다.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아무래도 확 뛰어올라 내 눈을 부리로 찍을 수 있는 거리를 재고 있는 것 같다.
공작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조금 더 이동하니 수십 마리의 펭귄들이 뒤뚱뒤뚱 모여있는데 정말 귀엽다. 물론 자세히 보면 좀 징그럽기도 하지만, 다시 멀리서 보면 또 귀여워진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정도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내게 다가온다. 동물원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동물원이라 그런지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은 것이다.
오늘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오늘 영업을 마치려고 합니다. 빨리 정문으로 이동 부탁드릴게요.
시계를 보니 세시 이십 분이다. 아무래도 여기 다시 한번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