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팔로알토에는 Kirk’s SteakBurgers라는 버거 전문점이 있다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는데 근처에 음식점이 너무 많으니 대체 뭘 먹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뭔가 좀 맛있는 것을 먹어봐야지’ 해봤자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니 저 음식들이 어떤 맛인지 감이 잡히질 않는데다가, 좀 맛있어 보이는 가게라도 줄이 길게 늘어서있으면 전혀 시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저 버거 하우스였다. 우선 가게가 넓고, 기다리는 줄이 비교적 짧은 게 맘에 들어. 1948년부터 영업을 했다니 팔로알토의 역사를 함께 써왔다고 할 수 있다. 가게 안에는 1950년대 흑백 사진들이 잔뜩 걸려있는데 엄청 구리지만 왠지 바로 언박싱 한 신상품 같은 느낌이 아니어서 푸근하다. 어쨌든, 스테이크 버거라니 맛없기 힘들잖아. 게다가 나는 배가 고프다고.
주문을 하는데 스테이크 버거는 두 종류다. 역시 혼잡하게 수십 개의 메뉴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메뉴 보드가 '우리는 이 것 밖에 없거든. 싫으면 가던지’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는 가지 않겠어.
가게 이름과 똑같은 버거를 고른다. 가게 이름을 건 메뉴는 항상 그곳의 필살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치즈도 추가했다.
많은 사람이 주문한 것 같지도 않은데 엄청 오래 걸려. 십오 분 이상 기다리니 겨우 내 이름을 부른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에게, 이게 뭐야. 빵 뚜껑이 열려 있고 - 먼지 들어가게 - 그 안에 치즈가 덮인 스테이크 밖에 없어. 뭐지. 심플한 요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이건 심하게 심플하잖아. 누가 이걸 햄버거라고 부를 수 있지? 빵 사이에 고기, 이빨 사이에 고기한 점 이런 이름이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70년 전통이 있는 가게니 맛이 희한하게 뛰어날 수도 있다.
…
전혀 희한하게 뛰어나지 않았다. 들고 올 때 홀 중앙에서 샐러드바를 지나쳤는데, 그거라도 주문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추가적인 주문으로 돈을 벌려는 프레임웍이라니. 이제 의문이 풀렸어. 그러니 사람이 줄을 서지 않는 거야. 70년 동안 발전이 전혀 없는 햄버거라니 아무래도 기네스북에 새로운 카테고리라도 만들어 올리도록 건의해봐야겠어.
고기와 치즈뿐인 버거를 반쯤 먹었더니 느끼해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12불이나 하는 햄버거니 다 먹어줘야지. 여기가 이익을 보게 할 수 없어. 내가 다 먹는 게 이 집을 망하게 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꾸역꾸역 한 조각만 남기고 겨우 다 먹어 갈 때쯤 샐러드바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 케첩, 머스터드, 칠리 등등 소스들이 엄청 많이 올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소스도 없는 햄버거를 먹었네. 미친 가게야. 근데 왠지 내가 뿌려먹어도 될 것 같아. 저 소스들은 아무래도 햄버거용 같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가서 손톱만큼 남은 조각에 케첩을 뿌리고 있는데, 밑의 샐러드들을 자세히 보니 햄버거에 들어가는 양파, 토마토, 피클 이런 것들이다. 옆에서 그것들을 자기 햄버거에 쓸어 담고 있는 예쁘장한 학생에게 살짝 물어봤다.
이거 햄버거에 맘대로 올려 먹는 거니?
(거의 다 먹은 내 햄버거를 쳐다보며) 응. 물론이지. (근데 거기엔 뭐 못 올리겠는데?)
……
정말 보통사람이면 그냥 맨 빵과 고기만 먹고 나갔을 거야. 난 진짜 똑똑하게 어떻게 먹는지 알아내고 말았다. 너무 현명해. ‘그래도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겠어!’라고 결심하며 나는 손톱만 한 빵에 손바닥만 한 토마토를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