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우리나라는 보통 식당가라면 거리의 건물 전체가 식당들로 빼곡히 들어 차 있으며, 카페거리나 주점거리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점심으로 뭘 먹어야 하지?’하는 고민 같은 건 거리 한두 블록 걸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만다. 선택의 폭이 많고 모두 바로 주변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하니 크게 어려울게 없다.
샌프란시스코가 서울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대부분 건물들이 저층 건물이며, 다층 건물은 대부분 회사 건물이나 거주지 건물이고 그것도 마켓스트리트 주변에 밖에 없다. 그래서, 상점들은 대부분 1층이고 거리 하나 전체가 식당이거나 카페인 경우도 거의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블록 건너 존재하는 스타벅스 조차 쉽게 찾기 힘들다.
그 이유로 뭘 먹을지 정확히 정하고 그 장소로 대화 없이 진격해야만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를 끝낼 수 있는데, 만약 도착해서 누군가가 ‘아 나는 오늘 이거 별로야’ 해버린다면 그 날은 제 시간에 점심을 해결하기 힘들다고 보면 된다. 그 흔치 않은 식당도 대부분은 ‘월리를 찾아라’처럼 집중해서 찾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람들을 따라 점심을 먹으러 가다 보면 ‘앗 여기에 식당이 있었어?’ 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간판이 없는 경우도 있고 - 그 유명한 타르틴 베이커리 같은 경우에도 간판이 없다 - 밖에서 대충 들여다봐도 저게 식당인지 바인지 분간도 잘 안 간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자신들 만의 맛집 리스트 같은 것을 두뇌 한 곳을 할당하여 보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렇지 않다 해도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로 엄청 아는 척을 해대는데, 이 곳엔 겸손 따위는 없다. 모두 전문가이고 노련한 숙련가인 것이다.
삶에 여유가 있는 곳일수록 건강에 더 신경 쓰고 디테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의 식당들을 보면 그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사실 꼭 여유뿐 아니라 이 곳의 문화가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주문을 할 때 개인화시킨 주문을 받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곳이 점점 늘어나고 사람들도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것이 좀 익숙하지 않고 귀찮게 느껴지기 때문에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시스템 덕에 웍 플레이스에서 대충 아는 사람들보다 난생처음 보는 포스 직원들을 상대로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간단한 주문인 ‘아메리카노’ 주문도 포스 앞에서 프로세스에 따라 디테일 점검을 받게 되는데,
안녕~
어 너도 안녕~
뭐 줄까?
아메리카노
크기는 어떤 걸로 해줄까?
작은 거…
우유 넣을 자리 남겨줄까?
아니…
시럽 넣어줄까?
아니…
여기서 마실 거야? 아니면, 가져갈 거야?
여기서…
너 이름은 뭐야?
.....
.....
................. 너 나 맘에 드니.....?
이 정도면 주문 취조 전에 미란다 원칙 고지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이 곳 고객들은 친구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더욱더 친밀한 대화를 추가적으로 추가해나간다.
나는 너무 뜨겁지 않게 해줘. 그렇다고 너무 차가운 것도 싫어.
디카페인으로 부탁해.
샷 추가해주고, 바닐라 시럽 추가해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환경에 관심이 많거든. 1회용 잔 말고 머그에 줄래?
....
뭐 기억이 안 나서 그렇지 엄청 많다. 미국 사람들하고 있을 때 ‘앉아 있어. 내가 가서 주문할게. 뭐 마실래?’라고 했다가 상당히 스트레스 받은 적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절대 그런 호의는 시전 하지 않는다. 커피도 이런데 식사는 더욱더 상상초월이다. 차라리 아주 고급 레스토랑이라면 천천히 추천받아가면서 주문할 수나 있지, 일반 식당에서 바로 뒤쪽 수십 명이 줄 서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에 드레싱 종류나 토핑까지 하나하나 대야 하는 경우가 되면 정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샐러드바 같은 곳은 드레싱만 이십 종류가 넘고 샐러드에 넣을 재료들도 포스 옆 진열대 안에 가득 차 있는데, 맛을 모르는 것은 기본이고 대부분 이름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 뿐이다. 심지어는 다 상추처럼 생겼는데 색깔만 조금씩 다른 게 열 종류가 넘는다. 어쨌든 그렇게 대충 주문하면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샐러드를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옆의 다른 사람들은 맛있어 죽겠다는 듯이 자기 것을 바닥까지 다 긁어먹는다. 레시피가 뭔지 궁금해 죽겠지만, 사나이 체면에 그런 것 물어보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보통 외국에 가면 음식이 맞지 않아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식당도 근처에 많지 않고 주문하기도 힘들며 맛도 대부분 비누 맛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입맛에 꼭 맞는 사람도 많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