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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옥타비아와 헤이스 스트리트에는 Patricia's Green이라는 길쭉한 공원이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규모의 깔끔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한가한 주말 즈음 근처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여 공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잠시 늘어져 있다가, 근방 로컬 상점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마켓스트리트나 쇼핑 타운들은 늘 사람과 노숙자들로 꽉꽉 차있고 매장들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대부분 볼 수 있는 브랜드들이라 어딜 가도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한두 번 가보면 꼭 살 것이 있기 전에는 다시 잘 안 가게 된다. 하지만, 필모어나 체스넛 혹은 이 옥타비아 스트리트 근처 같은 로컬 상점 거리는 여러 번 가더라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선 거리들이 깨끗하고, 상점들도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으며, 메인 스트릿처럼 사람 뒤통수만 보고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거리 중간에는 공원이 있기 때문에 왠지 더 평화스럽다. 벤치에 앉아서 구름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사람들이 끌고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뭔가 평화의 본질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는데, 뭔가 무겁지 않고 가볍게 요기할 수 있을만한 음식을 주변에서 찾다 보면 아마 'SOUVLA'을 찾아들어가게 될 것이다.


Souvla의 전기구이 기계


이 곳에는 Pork, Chicken, Lamb과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Veg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판매한다. 역시 간판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면 수십 마리의 닭이 꿰어 돌아가고 있는 전기구이 기계가 보이기 때문에 음식점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사이드도 있고 맥주까지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낮의 태양과는 찰떡궁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맥주는 아무래도 작렬하는 햇살 아래에서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조금 난해한 것을 참을 수 있다면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음식점인데, 메뉴들도 단순해서 이름을 이야기하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주문이 가능하다. 마치 한국 같다.


아무래도 전기구이 기계 속에서 성실하게 회전 면봉수행하고 있는 닭들을 정면으로 보면서 다른 종류의 샐러드를 주문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은 후 번호표를 올려두면 금방 순해 보이는 요리사가 샐러드가 담뿍 담긴 그릇을 들고 두리번거린다.


Souvla의 치킨샐러드


Chicken, "Reanch" Dressing, Fennel, Navel Orange, Pickled Red Onion, Pea Shoots, Mizithra Cheese


위가 이 샐러드를 구성하는 비밀 재료들인데, 별로 맛 같은 것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나도 '아, 뭔가 바로 만들어 온 것 같아'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모든 음식들이 주문을 받으면 바로 만들겠지만, 실제로 첫 술을 뜨거나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역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야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신선했고, 씹을 때마다 달콤한 오렌지 향은 입에 한 가득이다. 잘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는 각각의 악기 소리를 숨기고 하나의 음악을 전달하는 것처럼, 각 재료들은 일정 비율로 조화롭게 배합되어 마치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재료를 맛보는 느낌을 받는다. 이 정도면 지금 까지 먹었던 치킨 샐러드 중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물론 많이 먹어보지는 않았다.)


이렇게 뚝딱 하고 바깥으로 나오면 왠지 더 여유로워져서 구름은 더 천천히 흐르는 것 같고, 강아지들은 슬로우 비디오 영상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 이런 날은 잠을 제대로 못 자더라도 그냥 커피 한 잔 더 주문해서 공원에 조금 더 앉아있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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