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진절머리가 나는 게 비라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겨울 내내 비가 내리고 이렇게 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도 잊을 만하면 주룩주룩 내리니 어쩔 수 없다.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냐고 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두 자기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란다. 그리고는 바로 '비가 오면 꽃도 물을 먹고...'이러면서 좋아한다.
사실 나도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다. 비 오는 날에 건물 안에서 비가 내리는 바깥쪽을 쳐다보는 취미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인데, 신발만 젖지 않는다면 밝은 햇살 속을 걸어 다니는 것 따위는 고민도 안 하고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조금 다르다.
주말에는 보통 세탁을 하는데 비가 내리면 그것을 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깔끔해지는 것을 한 주 미루는 것도 찜찜하지만, 약간 습기가 남아있는 빨래를 햇빛 들어오는 창 앞쪽에 늘어놓고 그 옆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조는 것이 나름 주말의 행복이라 그것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
오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Cherry Blossom Festival이 있는데, 일본인들이 주최하는 벚꽃 축제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 수 주 전부터 날짜를 정해놓고 행사에 참여할 단체나 퍼포먼스들을 선정해두었을 테고, 샌프란시스코 시와도 시간대별 도로 통제 관련 협의를 했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다니, 정말 관계자들은 머리 깨나 아프지 않았을까. 차라리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린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누구나 행사 계획이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생활할 것 같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내리는 게 안개인지 비인지도 분간도 잘 안 가고 내리다가도 갑자기 햇빛이 쨍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더 헛갈렸을 것 같다.
자 오늘은 우천으로 계획되어 있던 행사를 취소하겠습니다.
했는데 오후쯤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에 사람들이 반팔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한다면 그것도 참 난감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도 있다. 보통 대부분의 행사들이 우비를 나누어 주더라도 그냥 수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한번 더 준비하기 귀찮은 것이 가장 클 것이라 생각한다. 나 같아도 처음부터 다시 시청 직원과 도로 통제 협의 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허탈이 극에 달할 것 같은데, 전화를 했을 때 '앞으로는 더 이상 도로를 통제하면서까지는 페스티벌을 수행하지 못하는 법안이 어제 통과되었거든요'한다면 정말 난감할 테니 말이다.
다행히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비가 와도 후드 모자만 뒤집어쓰고 잘도 걸어 다니기 때문에, 아마 오후에도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페스티벌 행렬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갈 계획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