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쓸데없는 조심

좌충우돌 샌프란 생존기

by Aprilamb

미국 사람들은 왠지 모두 거리에서 실실 웃으며 다닐 것 같은 느낌이지만 생각보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도로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터 섬의 모아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표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무표정할 때와는 다르게, 미소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후지산 모양으로 굳게 입술을 다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천천히 다가오며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사람을 보면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피하고 싶어 진다.


'저 사람까지 앞으로 여덟 걸음, 일곱 걸음... 세 걸음 앞에서 안주머니의 나이프를 꺼내 손날 모양 안쪽에 숨겼다가 한 걸음 앞에서 대장 부위를 향해 쑤욱.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쓰러지는 것을 부축했다가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면 바쁜 척 도망을 치면 되겠어. 다섯 걸음, 네 걸음...'


내가 스릴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건널목을 건너 멀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상대가 나를 봐도 똑같이 무서울 것 같네. 어쨌든 난 우리나라에서 단련 된 무표정 끝판왕이니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녕, 필모어의 NOAH'S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