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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계단과 양말 한 짝(3)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by Aprilamb



태어나서 양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적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 생각할 때는 그렇게 이상한 가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억을 뒤져보니 - 물론 일반화시키기에는 부족한 나만의 경험이긴 하지만 - 평생 양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양말을 구매해본 적도 없는 것이다. 적어도 양말은 남자에겐 마트에 갔다가 모양이 예쁘다고 장바구니에 집어넣게 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건 확실하다.

스타킹이라면 달랐을 거다. 이렇게 복잡한 경우의 수를 훑어갈 필요도 없었겠지. 스타킹은 - 잘은 모르지만 - 하루에 열두 번도 올이 죽죽 나가주는 것 같으니까. 심지어는 편의점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물론 양말은 팔지 않는다)


아 또 나가버렸어. 정말 올이란 건... 너무 잘 나가.

이러면서 지하 매점에서 스타킹을 사서는 그 옆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올이 나간 것은 주머니에 쑤셔넣었겠지. 자신이 입던 스타킹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을 리는 없다. 여자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모두 처리한 후 계단을 올라가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깔끔하게 처리된 상황에 살짝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점프를 했을 수도 있다. '아자' 이렇게. 여자는 흥이 넘치니까. 그때, 스타킹은 관성의 법칙과 중력에 의해 계단에 떨어지고 만다. 주머니 속의 물건은 늘 그렇다. 의지로 꺼내지거나, 그냥 주인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지거나.




중요한 것은 스타킹이 아니라 양말이라는 것이고, 양말은 스타킹과는 다르게 주머니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남자는 주머니에 양말을 넣지 않으니까.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주머니에 양말을 넣었던 적이!



있었다. 잊었던 기억이 갑자기 눈앞의 홀로그램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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