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양의 서재
너무 유명한 책이죠. 서점에 갈 때마다 들었다가도 '다음번에….'하며 내려놓게 되던 책입니다. 이 책은 다른 책에 실망 하게 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그런 이유로 서점의 인기도서 진열대에 운전대 옆의 목캔디처럼 꽤 오래 내버려 두고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란 건 - 행운과 마찬가지로 -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최근 읽다가 내버려 둔 책이 네다섯 권이 넘었습니다. 일도 진도 없이 바빠서 지치기만 했고요. 금요일이고 뭐고 대충 해가 떨어지자마자 다른 것들은 다 뒤로하고 집으로 가서는 대충 씻고 소파에 드러누웠습니다.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 같아져 버린 날씨 덕에 창문을 활짝 열 수 있었죠. 그렇게 추운 것인지 시원한 것인지도 모를 바람을 맞고 있다가, 패드를 꺼내 전자 서점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구매해 버렸습니다. 이제는 그때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위기의 순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책을 열 때가 된 것은 확실했습니다.
'채식주의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이후 관심이 높아져 인터넷상에 수많은 서평과 소감들이 있고,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는 분석자료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입니다. 굳이 거기에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날것' 같은 감상은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조금 들여다볼까요?
이 책은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 단편소설의 연작 작품입니다. 각 단편이 모두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발표되었기 때문에 문체나 이야기하는 방식들이 약간 차이가 있고, 오히려 그것이 더 작품을 특색 있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인 '채식주의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책은 바닥을 치는 니힐리즘과 극단적인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그로테스크한 표현들로 독자들을 서로 다른 감정의 폭풍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폭력에 대한 반항이라는 단순한 주제이며,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남을 해하지 않는 식물을 비폭력 상징의 도구로 사용합니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을 싫어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폭력성은 바로 인간의 폭력성이며, 이는 몇몇이 아닌 인류 전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됩니다.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 조르고 싶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힐 때,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와 나를 먹어버린 때, 그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정육점 앞을 지날 때 나는 입을 막아. 혀뿌리부터 차올라 입술을 적시는 침 때문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와 흘러내리려는 침 때문에.'
- '채식주의자' 중 -
그녀의 꿈은 그녀의 폭력성과 본능적인 악한 기질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는데, 그녀는 그 이유를 육식이라고 단정합니다.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경험하게 된 동물 학대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해 못 할 자신의 잔인함. 그리고, 그 경험 안에 또렷하게 남아있던 육식의 행위는 파멸의 의식처럼 그녀의 무의식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폭력성의 근원이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젖가슴은 그녀의 모든 것 중 유일한 비폭력의 상징이지만, 그것도 점차 여위어갑니다. 그것은 채식으로도 해결되지 않으며, 결국 작가는 첫 단편을 폭력성으로 폭주한 그녀(동박새를 잡아 물어뜯는 사건)와 그런데도 비폭력을 원하는 그녀(상의를 벗고 비폭력의 상징인 가슴을 드러냄)를 대비시키며 마무리하게 됩니다.
'몽고반점'과 '나무 불꽃'에서도 각 단편 나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모든 단편에 등장하게 되는 영혜는 나름대로 그 아래로 '채식주의자'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고 있는데요. 바로 비폭력을 이룰 방법은 수단의 변경(채식)이 아닌 본질의 전환(스스로 식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알겠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 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는 걸.'
- '몽고반점' 중 -
그녀가 자신의 폭력성은 육식이 아니라 자신이 동물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이제 더는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식물이 되기로 합니다.
작가는 단편 '채식주의자'에서 결국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독자들에게 떠넘기는 마무리를 하고 말았는데,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독자가 되어 해답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주제에 대한 구조는 '채식주의자'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식물이 된다'는 극단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나무 불꽃'은 작가적 상상력의 극을 보여주고 있고, 이로 인해 이 소설은 정체성과 함께 꺼지지 않을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읽어 내려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만났던 것 같아요. 허울 좋은 명성을 뒤집어쓴 졸작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과 대중의 기호를 따르지 않고 내 이야기만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작가 한강. 그리고, 그녀의 '채식주의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