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부활을 꿈꾸며

황효진의 '아무튼, 잡지'

by Aprilamb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사야 할 책만 구매한 후 바로 나오려는데 정문 앞의 베스트셀러 옆쪽에 새로운 코너가 생긴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 코너. 베스트셀러들과는 다르게 하나하나 너무 재미있을 것만 같은 책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가운데에 '아무튼, 잡지'라는 책이 눈에 띄었어요.


'아무튼' 시리즈는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위고’, ‘제철소’, ‘코난 북스’ 세 출판사가 협업해서 발간하고 있는 주제별 연작 에세이예요. 그중 '아무튼, 잡지'는 ‘아무튼’ 에세이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으로,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황효진 작가만의 독특한 잡지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을 때, 마감을 다 끝내고 편한 차림으로 침대에서 뒹굴며 여유를 부리고 싶을 때, 사무실에서 마감을 하다 도무지 풀리지 않아 근처 책방으로 잠시 바람 쐬러 나갈 때..., 그때마다 나는 잡지를 찾았다. 그리고 나면 잠깐이나마 뭔가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의욕, 지금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솟았다.

황효진의 '아무튼, 잡지' 중


'아무튼, 잡지'는 잡지를 소재로 여러 일상다반사를 소소하게 풀어가고 있는데, 그중 이사를 가면서 버릴 물건을 정리하는 글이 재미있었어요. 그녀는 잡지사에서 오래 일하기도 했고, 잡지를 좋아하기도 해서 꽤 많은 잡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준비를 하면서 짐을 줄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역시 가장 많은 짐은 잡지였으니까. 그녀는 큰맘 먹고 하나하나 냉정히 평가한 후 버릴만한 잡지들을 골라내기 시작합니다. 잡지들은 마치 전후(戰後)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전범 재판의 기소자들처럼 질릴 정도로 쌓여 있지만, 쓰레기 같은 기소자들과는 달리 나름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성실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되죠. 하지만,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짐을 많이 줄이지도 못하고, 이후에도 버렸던 잡지들이 계속 가슴에 밟혀서 결국 후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저도 - 아주 가끔이지만 - 방이 지저분해 보이면 큰 맘먹고 모든 물건들을 방 한가운데로 집결시킨 후 하나하나 평가하여 버릴 물건들을 골라내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은 버릴 물건을 골라낸다기보다는 이전보다 조금 더 구조적으로 물건을 재배치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어버려요. 다른 사람이 본다면 해당 작업 전 후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가끔은 저도 그 차이를 찾아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아마 청소 전에도 이미 정리가 잘 되어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각 물건의 평가작업을 하게 될 때는 정말 한없이 정 많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걸 어쩌나요.

요즘 미니멀 라이프, 버리는 삶, (거실을) 비워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나 방송들이 너무 많아서,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 같네요. 그런 이들에게 이 책에서 만나 제가 큰 위안을 받았던 글귀를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인 공간은 역시 최고다!


역시 그렇죠?


그냥 공짜로 읽고 와서 미안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집어 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훅 다 읽고 말았음), 지금 에세이류 베스트셀러인 '언어의 온도'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같은 책들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유병재에게는 미안하지만 웃기려고 쓴 책인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보다도 더 재미있는 걸 어쩌지?(유병재의 책은 좀 너무 재미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아무튼, 잡지’는 베스트셀러에 속아 '다시는 책 안 사봐야겠어' 했던 사람들에게 한번 추천해보고 싶은 책이에요.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의 범람과 콘텐츠 소비성향의 변화 속에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잡지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른 사라지는 것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잡지의 폐간은 왠지 문명의 소멸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나 한번 더 봐야겠네요.


아무튼, 한번 읽어보세요. '아무튼, 잡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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