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와 한강
꽤 오래전부터 봐야겠다 했던 책들을 우연히 지난주에 동시에 읽게 되었습니다. 두 소설 모두 단편집 형태라 번갈아 가면서 읽어도 괜찮더라고요. 사실 저는 장편도 두세 개를 한꺼번에 읽는 경우가 꽤 있는 동시다독 베테랑입니다.(한 권 읽을 때도 주인공을 헷갈려하긴 하지만요.)
하나는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이라는 단편 소설집.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강의 ‘흰’이라는 소설이었어요.
저는 취향이 독특해서 - 라기보다는 까다로워서 -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는게 쉽지 않습니다. 들고는 서너 페이지를 읽다가 계속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내려놓는 경우도 꽤 있고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파는 패턴으로 독서를 하는 편인데, 되도록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제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니 그 취향을 존중받고 싶어 해도 되겠죠? 작가들은 싫어하겠지만.
오래 전에 김영하의 ‘살인자의 추억법’을 조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어서, 두 작품을 집어 드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어요.
우선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
일단 재미는 있습니다. ‘오직 두 사람’에서는 동명의 단편 포함 여섯 개의 단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중 몇 개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과감하게 뒤집는 신선한 발상으로 전개되기도 합니다. 그런 건 새롭기는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는 일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가야 할거에요. 마치 독자와 함께하는 이인삼각 달리기처럼 말이죠. 작가 혼자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런데, 숨이 짧은 단편이라면 그것이 더 어렵겠죠?
이 책은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작품은 없었어요. 문학적인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논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물론 소설이라는 게 ‘재미만 있으면 되지!’ 싶기도 합니다. 뭔가 깊이 있는 감동을 주려 하거나 고결한 의미를 행간에 묻으려면 테크닉이 필요하니까. 그게 부족하면 재미도 없어지고, 흐름도 자꾸 끊깁니다. 그런데, 그런 테크닉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아. 이거 이런 이야기 하려 하는 거구만? 날 가르치려는 거야?’
하고 들켜버리면 산통 다 깨져버리니까. 그냥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처음 만들어놓은 뼈대 위에서 시간, 의식, 사건의 흐름에 따라 술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런 건 작가의 작전일 수도 있습니다. 유니클로 같은 정책으로 베스트 셀러작가를 노려보는 그런 것.
‘오직 두 사람’을 읽으면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 강했던 것 같아요. 술술 읽히지만, 약간 가벼운 느낌.
‘그렇다면, 대체 네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단편이 있기는 하니?’
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단편집 중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자려고 눕거나, 여름에 창을 열고 바람을 기다리거나, 혹은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 가끔 그 작품이 생각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 친구 중에서는 그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긴 합니다. 역시 ‘개인 취향의 다양성’이라는 건 모든 예술작품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 아니겠어요?
다음은 한강의 ‘흰’인데요.
처음에는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흰’을 대변할 수 있는 오브젝트들을 선정하고 그것들에 각각 한두 페이지 남짓 되는 스토리들을 붙여준 쪽글 모음집이었어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포맷으로 단어의 설명 대신, 해당 객체를 담고 있는 서정적이고 잔잔한 이야기를 배치했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새롭긴 했지만(그리고, 책도 예쁘긴 했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좋았던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크게 별생각 없이 훅훅 넘기게 되더라고요. 사실 책이 짧지 않았다면 끝까지 안 읽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헤밍웨이는 단 여섯 단어로도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라는 멋진 소설을 써냈다고 하죠. 그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 감동적인 문장이기는 합니다만 - 소설인지는 잘. 요즘에는 ‘톡소설’이라는 것도 나오고, 또 그걸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더라고요. 새로운 콘텐츠의 진화(인지 퇴보인지는 모르겠지만)에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저는 그게 좀...
두 권 모두 시간이 많이 남으시는 분이나 두 작가의 골수 팬분에게만 추천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