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아플 준비

서울, 오늘 날씨는 맑음

by Aprilamb

‘이다음 증상은 뭐야?’
‘이제 낫는 것 같다가 다시 코로 옮겨가고 몸살이 시작될 거예요.’
‘분명히 나아가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그 말이 틀릴 리가 없는 게, 이 감기는 같이 스터디하는 이 친구와 프로젝트 레포지터리 세팅을 하다가 옮은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때 이 친구는 세팅을 도와주면서 연신 기침을 해댔었다. 도와주는 게 고맙다가도 내 얼굴에 연신 기침을 해댈 때는 세팅이고 뭐고 도망치고 싶어 졌는데, '저 친구도 감기가 걸리고 싶어서 걸렸던 건 아닐 텐데'하다가도 내 얼굴에 기침을 하면 다시 '걸려도 싸네' 하기를 반복했었다. 결국 레포지터리 세팅은 실패하고 말았고, 다음 날 나는 감기에 걸렸다.


이제는 기침도 조금 부드러워져서 막바지구나 싶었던 감기는 - 그 친구 말대로 - 초봄의 꽃샘추위처럼 다시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몸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고, 피부는 산들바람에도 난도질당한 것처럼 쓰렸다. 작년 독감에 걸려 집 밖으로 일주일 동안 나가지 못했을 때에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내 몸이 아니었던 그날은 하루 종일 회의가 잡혀 있었다. 힘들게 오전 회의를 마치고 나니 이미 몸은 방전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침대에 몸을 묻고 아베 마사시의 Wake Up From A Dream을 들으며 상태가 나아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는 오후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건물 밖으로 걸어나와 택시를 잡았다.


'학동사거리요'


조금 아팠으면 집으로 갔을 테지만, 너무 아파서 나는 학동사거리에 있는 단골 미용실로 향했다. 사실 머리 자를 때가 되어서 이번 주 내내 주말 아침에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 속 머리를 말리는 부시시한 나를 보면서 '저 꼴 봐라. 꼭 가야겠어.' 하며 의지를 다졌다.


'주말에 편하게 아프려면 지금 머리를 잘라야 해.'


이대로라면 너무 아파서 주말에 머리를 자르지 않은 채로 월요일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지금 머리를 자르고 가면 주말에 마음 놓고 빈둥거리면서 아플 수 있다. 숙제를 밀리는 것은 익숙하지만, 숙제를 안 해간 적은 없는 것이다.


....


‘머리 예쁜데요?’


자기가 잘라놓고 예쁘다니. 하지만, 뭐든 좋았다. 주말에 편하게 아플 준비는 끝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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